2월, 우리들은 차를 한 대 빌려 여행을 떠났다. 사순절이다 뭐다 해서 2월 중에는 꽤 긴 방학이 주말 포함 무려 5일이나 되었다. 우리는 휴가 계획을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정해진 루트는 이러했다. 포 공항에서 차를 빌린 다음 카르카손으로 내려간다. 그다음 알비를 거쳐 사를라, 생테밀리옹으로 갔다가 여유가 되면 해안가 도시를 들러 제철 굴을 맛본 다음 랑드 평원을 가로질러 돌아온다. 카르카손에는 꽤 큰 성채가 있고, 알비에는 로트렉 미술관이 있다. 사를라로 말하면 여러 세기의 건물들이 공존하는 예쁜 도시다. 이동하는 길에 까뮈가 좋아했던 코르드 쉬르 시엘 등 각별히 예쁜 마을도 들르고 라스코의 동굴 벽화도 구경할 작정이다. 그리고 생테밀리옹에서는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와인 견학을 할 것이다. 이 전체 코스는 결국 페리고르 지방을 한 바퀴 돌며 갖은 아름다운 마을을 눈에 담는 여행으로 기획되었고 이제 펼쳐질 풍경은 기차 여행으로 보는 것들과는 사뭇 다를 것이었다. 계획도 완벽했고 실제 여행도 거의 완벽했다. 있을 법한 두세 가지 잡음만 제외한다면. 그리고 여행의 미덕이란 이 잡음을 통해 항상 유용한 교훈을 남긴다.
여행의 시작은 희희낙락 즐거웠다. 툴루즈의 휴게소에서는 호숫가의 오리, 백조들과 함께 노닐며 샌드위치로 피크닉을 즐겼다. 툴루즈는 바람이 엄청났다. 이전에 내가 바람을 좋아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툴루즈로 가보라고 했던 마리 크리스틴의 말이 기억났다. 카르카손까지도 문제없이 도착했고 조금 늦은 시각에 약간 외진 곳을 헤매었으나 꽤 기억에 남을 만한 숙소에 도착했다.
이 숙소는 여기 정착하여 사는 영국 부인이 운영했다. 방들은 나무랄 데 없었고 멋진 고양이도 두 마리 있었다. 부인은 친절과 기품으로 빛났다. 허브가 자라는 정원이며 시원스럽고 넉넉한 주방, 모든 장식은 하나같이 정겨웠다. 그날 저녁 우리는 기분이 좋아져서 와인을 나누어 마시며 왁자지껄했다. 어지간히 마셨고 정담이 오갔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행복에는 늘 어느덧 작은 균열이 찾아들게 마련이어서 그 균열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노출되었다. 그 전날 에리나는 파스타 등을 해먹으며 여행하자고 했다. 다음 날 아침, 그녀의 제안대로 잔뜩 사 온 파스타 재료를 썰기 시작했다. 에리나는 도와줄 듯 옆에 있다가 곧 사라져서는 화장실을 독차지하며 화장을 하고 왠지 요리는 나 몰라라 했다. 어찌 보면 이는 우리 사이에 필요한 의사소통이 생략되어 초래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슬그머니 삐져버렸다. 어쨌거나 그때는 한껏 여유로운 에리나가 어쩐지 굼뜨고 무책임해 보였다. 불만은 겉으로는 평화를 가장한 채 계속 억압되고 축적되어가다가 종내에는 마지막 밤, 말다툼도 토론도 아닌 형태로 폭발했다. 발단은 에리나의, 서구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비난이었다. 나는 동조해 주기는커녕 단지 그것을 에리나의 오래 반복된 투덜거림으로 간주하여 묵살했다. 그래서 나는 평소의 이해심 많은 친구의 포지션을 벗어나 묘하게 거슬리는 방식으로 그녀의 의견을 반박해버렸다.
카르카손의 성채
그래도 겉으로는 감탄으로 가득한 여행이었다. 카르카손의 근사한 성채를 돌아 위쪽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푸르지도 꽃피지도 않은 풍경이지만 뭐라 말할 수 없이 예뻤다. 이 작은 몇 지역만 다녀 봐도 왜 프랑스에 화가들이 많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렇듯 멋진 풍경이 가득 펼쳐지니 뭐라도 그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덧 산 중턱을 돌아가던 우리는 로카마두르에 이르자 맞은편 경치에 놀라 일제히 “세상에 저게 다 뭐야!”라고 탄성을 지르며 차에서 내렸다. 애초의 목적지는 아니지만 우연히 발견한 로카마두르는 비경이라 할 만했다. 바위벽들에 빼곡히 박혀 있는 알록달록한 집들이라니! 마을 전체가 암벽들에 박힌 오지였다. 비탈에 서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밑의 풀숲에선 근사한 뿔이 달린 사슴 종류의 동물 몇 마리가 휙 지나간다. 세상에 있지 않은 풍경이었다. 마을에 가보고 싶었으나 무슨 공사 때문에 접근이 어려워 그냥 지나쳐야 했다.
라스코의 동굴벽화는 기대와는 달리 원본이 아니었다. 진짜 동굴을 잘 보존하기 위해 동굴을 하나 완벽하게 카피해서 공개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실제와 거의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진짜 동굴 그대로인, 흡사 진짜 같은 가짜였다.
며칠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사를라에서는 지방 명물인 푸아그라와 트뤼프도 사고, 이 가게 점원이 추천해 주는 레스토랑에 가서 구운 푸아그라와 트뤼프를 넣은 오믈렛을 먹었다. 코르드 쉬르 시엘에서는 무타르 아 라 비올레트moutard à la violette(제비꽃 원료의 겨자)와 제비꽃 식초도 샀다. 그런가 하면 중간 휴게소에서는 당나귀 우유로 만든 비누도 샀다. 비누 표면에는 꽃을 문 당나귀가 새겨져 있어 쓸 때마다 당나귀가 닳아나가는 게 영 아까웠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각자의 작은 전리품들을 챙겨 트렁크에 속속 저장했다.
개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는 생테밀리옹에서 관광안내책자를 보고 찾아간, 포도밭 한가운데의 농가였다. 이른바 셩브르 도트chambre d'hôte(민박)였는데, 반지하 비슷한 곳에 아늑하고 정겨운 인테리어였고 모든 집기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거기에서 밤늦게 인종차별 주제로 토론의 꽃을 피우다가 불꽃이 튀어 화염으로 번지기도 했다. 여행 첫날에 품은 나의 원한은 가시기는커녕 점점 부풀려져서는, 마지막 슈퍼에서 장을 볼 때 여지없이 풀레 로티poulet roti(튀긴 통닭)를 고르는 에리나가 또 마땅찮게 여겨졌다. 에리나의 통닭 사랑은 유서가 깊어 평소에도 기분 나면 수시로 튀긴 닭을 먹자고 졸라댔는데, 사실 이게 기름기가 많아서 그리 자주 먹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 에리나의 풀레 로티는 작은 코슈마르cauchemar(악몽)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아침. 햇빛은 눈부셨고 우리는 이 농가 가족의 다정한 추억들이 가득 밴 거실로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거기 식탁 위에는 환상적으로 따끈따끈한 크루아상과 커피, 근사한 빵들과 집에서 만든 잼과 버터 등이 놓여 있었다. 세상에 집밥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몇 마리 고양이들이 햇살 속에 어슬렁거리는 농가의 아침밥이란! 식사 후 부인은 우리를 포도밭으로 데리고 가 포도 재배에 대해 강의해 주었다. 그것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농사였다. 세계적 와인 생산지 한복판에서 듣는 포도 재배 특강이라니!
이윽고 해는 벌써 중천에 가까워 작은 불만도 원한도 모두 너른 포도밭 위로 날리고 그곳을 떠났다. 이 도시를 벗어나 하염없이 랑드를 가로질렀다. 끝없는 소나무의 평원과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자잘한 원한 따위는 그리 오래 간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포 공항까지 차 반납 시간에 맞춰 도착하려면 시간이 넉넉지 않아 바닷가 굴 이벤트는 포기하고 오로지 남으로 남으로 향해야 했다.
학기 말에는 또 분반 시험을 봐야 했는데, 좀 어려웠고 나의 성의도 예전만 못했다. 이미 최고반이고 하니 방만해진 것이다. 게다가 대망의 영국 여행이 기다리고 있는데 시험이 대수인가? 심지어 런던 가는 비행기 표에 맞추느라 마지막 이틀의 수업은 맘 편히 제쳐버렸다.
이른 봄에 포를 뒤로하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까운 일이다. 남녘 나라인 포는 일찌감치 화창하여 온갖 꽃이 만개하기 때문이다. 꽃샘이라 할 만한 게 있기나 했던지, 봄은 주저 없는 신랑의 보무당당한 걸음이다. 카니발이 곧 봄맞이 선언인 셈이다. 벚꽃과 수선화들을 칭송하기에도 입술이 너덜너덜해질 지경이다. 학교 가는 길에 들러리처럼 늘어선 분홍 벚꽃 나무들은 그 아래로 삼삼오오 와인병을 들고 모이고 싶게 만드는가 하면 교정에는 흡사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처럼 우아한 벚나무까지 있어 지나다 경의라도 표해야 할 것 같다. 이런 호시절에 ‘황무지’의 나라 영국으로 떠난다는 것은 미처 청산하지 못한 우수를 다시 붙들러 가는 격이다.
영국 여행. 우리는 런던 공항에서 차를 렌트했다. 렌트 사무실 직원 아주머니는 꼭 영국 코미디에 나올 법한 모습과 말투로 중얼거렸다. “영국에 뭐 볼 게 있다고 사람들이 오는지 몰라, 비나 내리고 날씨는 나쁘고.” 나는 딱 그래서 좋은 나라였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이게 영국이고 런던이구나!’ 싶게 전설적으로 흐린 하늘을 만났고, 차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이란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봄이 오기 전의 황막함 그대로인 것이 맘에 쏙 들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도 프랑스와는 사뭇 달랐다. 음식들이 푸짐했다. 누가 영국 요리가 먹을 만하지 않다 했던가? 피시 앤 칩스도 좋았고 파이들은 먹음직했다. 다만 내가 시킨 양다리는 팔뚝만 해서 처음에는 감탄했으나 들고 뜯다 보니 문득 기분이 그게 아니게 되었다. 고속도로 주변 언덕마다 온통 하얗게 있던 그 양이 이렇게 변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평소에는 동물들을 보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기에 별생각 없이 고기를 먹었지만, 눈앞에 양이 보이는 환경에 산다면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나의 뇌 속에서 더 이상 추상화되고 물질화된 ‘고기’가 아니라 동물 개체인 ‘예쁜 양’으로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서만 딱 한 번 양다리를 먹었고 이후 다시는 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