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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Jun 13. 2024

셜록 홈스의 나라에서

   








삼월은 봄의 가을, 만성절의 내음이 난다.

나는 자살로 추정된 나의 사인死因과 살인범들을 캐고 다니는 

탐정이 된다. 이 세상에 나는 두 겹으로 파견되었다.

미끼로서 죽도록 먼저 던져진 나와 그다음의 나, 바로 탐정.    


 

    작별당하고 싶은, 그러나 한 번에 작별당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벽을 넘을 수 있게 등을 내주었는데 내 등을 밟았던 자가 저편으로 넘어가자 뒤를 돌아보며 너는 왜 여태껏 쭈그리고 있느냐 했다. 예의 교육상 뒤늦게나마 고발장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인과를 생선 가시처럼 발라낸 다음 무엇이 남는지 궁금해졌다.

    고통이 조금씩 발효해서 빵은 맛있게 익어갔다. 내가 구운 빵에서 베이킹파우더의 텁텁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거다. 가장 안타까운 속죄는 스스로 소중히 여기지 못한 모든 시간에 대하여서다. 고통을 건너간 이들이여! 좀 정리가 이루어지고 나면 유독 당신이야말로 당신을 인정하지 못한 최종 인물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럴 때는 누군가의 한두 마디가 결정적 도움이 된다. 당사자는 명함과 문패에 항상 통증의 이력을 달고 있으므로. 고독엔 충만함도 있으되 어찌 되었든 고독은 오래 묵은 독毒이었다. 이제 그 해묵은 명함을 바꿀 때가 되었다.


      



요크





    여기는 셜록 홈스의 나라다. 명탐정이 나오는 게 당연할 만큼 참 우중충한 나라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이미 어두워진 길을 따라 아주 을씨년스러운 고딕이 우글거릴 것만 같은 요크로 떠난다. 

    계속되는 에리나의 운전은 편안하다. 우리 모두는 에리나의 운전에 감탄했다. 지난 프랑스 여행 때 방만해 보였던 에리나는 자기 본토인 영국으로 오자 제 역량을 발휘했다. 운전석 위치 문제로 프랑스에서 그녀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새삼 어른스러워 보인다. 에리나가 주는 느낌은 항상 그랬다. 의연하게 살아가야 하는 어른의 삶을 미처 다 받아들일 사이가 없었던 어린아이가 반항기 어린 우수를 간직한 모습. 가끔 에리나는 자신이 밑바닥에까지 이르는 경험치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담배를 빨아들이고 다시 뿜는 모습은 그녀가 살아온 나이보다 더 짙은 우수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쩐지 늘 에리나가 애틋하다. 


    에리나의 부드러운 주행 덕분에 포근하게 휴식하며 무의식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영국, 낯선 도시에서 도시로의 이동 중 차창 바깥 유리에 엉겨 붙는 빗방울들. 여기서 내 지난날의 어린 유령들은 유리창에 몰려와 울먹이며 부딪고 작은 방울들로 점점이 일렁인다. 이제 작별하여야 할 망령들이다. 더는 늦출 수 없다. 

    지난 세월, 나의 이야기들은 ‘내 오랜 친구 어둠darkness my old friend’의 영역에 줄곧 거주해왔다. 지금 과거의 얼룩이란 에리나가 모는 차 유리창에 엉겨 붙는 물방울에도 엉기지 않고 따로 노는 까만 흑점 같다. 어떤 심리적 극한에 갔던 이에게 섣불리 '적당히'라는 부사는 사용하지 말 것이며, 흑점이 사라지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어야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두운 어떤 힘에 납치된 것만 같은 악몽이었다. 아이는 공포의 스크럼에 저항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다만 버티기 위하여, 세상을 가면무도회라 간주했을 뿐이다. 아이는 부모의 시야에서 멀어진 모든 순간 녹아 없어지는 밀랍인형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부모가 돌아보면 아이는 다 녹아 그 자리엔 웬 빈껍데기만 있을 수도 있다. 기겁할 겨를조차 없을 것이다. 녹아 사라진 아이의 마음이 보이지도 않을 테니까. 부모의 삶이란 분주하니까.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을 여의었고, 오래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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