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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해지는 순간, 6km

by 존버헨리

러닝을 하다 보면, 누구나 자기만의 습관이나 버릇, 루틴 등이 있을 것이다. 러닝이 그냥 운동화 신고 나가서 뛰는 단순한 것일 수도 있으나, 뛰는 이유도, 방법도 매우 다양할 것이다. 마치 야구선수들의 타격폼이 다 다르고 경기 시작 전 루틴이 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나도 뛰다 보니, 나만의 습관 같은 게 있다. 아니, 있었다가 사라진 것도 있고 아직까지 꾸준하게 가지고 있는 습관도 있다.


일단 내가 달리기 초보였던 시절에 나만의 습관 중 하나는 달리기가 끝난 후 어딘가 바로 누워 버리는 것이었다. 처음에 3km도 버겁던 시절, 나는 아파트 단지 내를 두세 바퀴 정도 뛰는 러너였다. 주로 밤에 뛰었기 때문에 단지 내에 사람은 별로 없었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3km를 달렸으니 더 이상 걸을 힘도 서있을 힘도 없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평상 같은 곳에서 달리기를 끝내게끔 맞춰서 뛴 다음, 그 평상에 바로 대자로 뻗었다. 심장은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뛰었고, 그렇게 대자로 누워서 하늘을 보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사실 하늘이라고 할 것도 없이 아파트 건물의 필로티 구조의 콘크리트 천장을 바라볼 뿐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 후 거리를 늘려 5km, 10km를 천변에서 뛰기 시작했지만 이 습관은 그대로 이어졌다. 천변 다리 밑에 운동장 스탠드 같은 곳이 있었고, 나의 러닝 종료 위치는 당연히 그곳이 되었다. 끝나면 바로 누울 수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천변에는 밤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너무 힘들기도 하고 밤이라 잘 안 보이니까 드러눕는 것 자체가 그렇게 부끄럽지만은 않았다. 이 때는 러닝 끝나자마자 신발끈을 풀고 신발을 벗어젖히고 바로 대짜로 누워버렸었다. 누군가는 러닝 후에도 스트레칭을 하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 뛰는 초보 러너였기 때문에 스트레칭 같은 건 할 여력이 없었다. 다만, 천변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걷기 운동(?) 정도가 나의 마무리 의식이었다. 사실, 그때는 집까지 걸어가는 것조차도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나의 습관 중 하나는 뛰다가 너무 힘들 때, 속으로 숫자를 세는 것이다. 1부터 100까지 세고 또 세고 또 세고.... 주로 달리기 끝날 무렵에 숫자를 셌다. 아직 1km나 남았는데 힘은 없고 가긴 가야겠고 시간은 안 가고 그런 느낌이 들 때 내가 썼던 필살기다. 1부터 100까지 세면 100m를 갔을 것 같았는데, 워치를 보면 사실 100m도 채 못 갔다. 대충 1부터 100까지 숫자를 15~16번 정도 반복해서 세면 1km를 채우고 러닝이 끝났다.


끝나고 대자로 누워버리는 습관은 달리기 거리가 더 늘어나면서 누울 곳이 없는 곳에서 달리기를 끝내는 경우가 많아져서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힘들 때 숫자를 세는 일도 지금은 자주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초보 시절처럼 온 힘을 다해 뛰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비축해서 내가 가진 에너지의 80% 정도만 사용해서 러닝을 하고 보통 마지막에 좀 더 힘을 내서 뛰는 루틴으로 나의 달리기 습관이 바뀐 탓이다. 달리 얘기하자면, 숫자를 셀만큼 그렇게 힘들게 뛰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습관은 아니지만, 나는 달리기를 하다가 6km를 지나면 몸도 가벼워지고 호흡도 아주 편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러너스 하이까지는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는 그런 순간이다. 이런 순간이 나에게 생긴 건 처음 10km를 뛰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생겼다. 매번 5km만 뛰다가 10km를 뛰려고 하니 덜컥 겁부터 났고 내가 10km를 뛸 수 있을까, 지겨워서 어떻게 뛰지, 무릎 나가는 건 아닌가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었고, 지나고 생각해 보면 신체의 한계보다는 심리적 장벽이 꽤 높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 중간에 쉬었다 뛰자였다. 그래, 10km를 꼭 한 번에 뛰란 법은 없으니 반쯤 뛰고 쉬었다가 또 뛰자. 중간에 쉬면 5km에서 쉬는 건데, 5km에서 쉬어버리면 <아, 아직도 반밖에 못 뛰었어, 반이나 더 뛰어야 되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냐 반밖에 안 남았냐처럼 꽤나 심리적인 이유였지만, 나에게는 반이나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1km만 더 가서 쉬자고 생각을 했고 6km에서 쉬기 시작했다. 아 이제 4km만 뛰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심신의 안정이 찾아왔고 무사히 10km를 뛸 수 있었다. 뛰는 루트에 따라 6km 지점에 쉴만한 곳이 없으면 때로는 7km에서 8km에서 쉴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반 이상은 뛰고 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물론 지금은 쉬지 않고 10km를 뛸 수 있는 러너가 되었지만, 지금도 6km가 지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호흡도 편안해진다. 생리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나에게 6km는 이제 반 이상 뛰었으니 나머지도 조금만 더 뛰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거리가 되었다. 15km, 20km를 달릴 때도 일단 6km를 뛰었으니 10km는 무난히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11km쯤 지나면 이제 4km만 뛰면 15km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자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목표거리의 절반에서 조금 더 뛰고 난 구간이 나의 마음이 아주 편해지는 그런 순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절반에서 좀 더 뛴 그 구간을 꽤나 의식하면서 뛰고 있다.


스마트 워치가 없었다면, 나는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고 10km를 뛰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 워치가 있어서 이 얼마나 뛰기 좋은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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