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을 하다 보면, 누구나 자기만의 습관이나 버릇, 루틴 등이 있을 것이다. 러닝이 그냥 운동화 신고 나가서 뛰는 단순한 것일 수도 있으나, 뛰는 이유도, 방법도 매우 다양할 것이다. 마치 야구선수들의 타격폼이 다 다르고 경기 시작 전 루틴이 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나도 뛰다 보니, 나만의 습관 같은 게 있다. 아니, 있었다가 사라진 것도 있고 아직까지 꾸준하게 가지고 있는 습관도 있다.
일단 내가 달리기 초보였던 시절에 나만의 습관 중 하나는 달리기가 끝난 후 어딘가 바로 누워 버리는 것이었다. 처음에 3km도 버겁던 시절, 나는 아파트 단지 내를 두세 바퀴 정도 뛰는 러너였다. 주로 밤에 뛰었기 때문에 단지 내에 사람은 별로 없었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3km를 달렸으니 더 이상 걸을 힘도 서있을 힘도 없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평상 같은 곳에서 달리기를 끝내게끔 맞춰서 뛴 다음, 그 평상에 바로 대자로 뻗었다. 심장은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뛰었고, 그렇게 대자로 누워서 하늘을 보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사실 하늘이라고 할 것도 없이 아파트 건물의 필로티 구조의 콘크리트 천장을 바라볼 뿐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 후 거리를 늘려 5km, 10km를 천변에서 뛰기 시작했지만 이 습관은 그대로 이어졌다. 천변 다리 밑에 운동장 스탠드 같은 곳이 있었고, 나의 러닝 종료 위치는 당연히 그곳이 되었다. 끝나면 바로 누울 수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천변에는 밤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너무 힘들기도 하고 밤이라 잘 안 보이니까 드러눕는 것 자체가 그렇게 부끄럽지만은 않았다. 이 때는 러닝 끝나자마자 신발끈을 풀고 신발을 벗어젖히고 바로 대짜로 누워버렸었다. 누군가는 러닝 후에도 스트레칭을 하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 뛰는 초보 러너였기 때문에 스트레칭 같은 건 할 여력이 없었다. 다만, 천변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걷기 운동(?) 정도가 나의 마무리 의식이었다. 사실, 그때는 집까지 걸어가는 것조차도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나의 습관 중 하나는 뛰다가 너무 힘들 때, 속으로 숫자를 세는 것이다. 1부터 100까지 세고 또 세고 또 세고.... 주로 달리기 끝날 무렵에 숫자를 셌다. 아직 1km나 남았는데 힘은 없고 가긴 가야겠고 시간은 안 가고 그런 느낌이 들 때 내가 썼던 필살기다. 1부터 100까지 세면 100m를 갔을 것 같았는데, 워치를 보면 사실 100m도 채 못 갔다. 대충 1부터 100까지 숫자를 15~16번 정도 반복해서 세면 1km를 채우고 러닝이 끝났다.
끝나고 대자로 누워버리는 습관은 달리기 거리가 더 늘어나면서 누울 곳이 없는 곳에서 달리기를 끝내는 경우가 많아져서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힘들 때 숫자를 세는 일도 지금은 자주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초보 시절처럼 온 힘을 다해 뛰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비축해서 내가 가진 에너지의 80% 정도만 사용해서 러닝을 하고 보통 마지막에 좀 더 힘을 내서 뛰는 루틴으로 나의 달리기 습관이 바뀐 탓이다. 달리 얘기하자면, 숫자를 셀만큼 그렇게 힘들게 뛰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습관은 아니지만, 나는 달리기를 하다가 6km를 지나면 몸도 가벼워지고 호흡도 아주 편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러너스 하이까지는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는 그런 순간이다. 이런 순간이 나에게 생긴 건 처음 10km를 뛰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생겼다. 매번 5km만 뛰다가 10km를 뛰려고 하니 덜컥 겁부터 났고 내가 10km를 뛸 수 있을까, 지겨워서 어떻게 뛰지, 무릎 나가는 건 아닌가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었고, 지나고 생각해 보면 신체의 한계보다는 심리적 장벽이 꽤 높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 중간에 쉬었다 뛰자였다. 그래, 10km를 꼭 한 번에 뛰란 법은 없으니 반쯤 뛰고 쉬었다가 또 뛰자. 중간에 쉬면 5km에서 쉬는 건데, 5km에서 쉬어버리면 <아, 아직도 반밖에 못 뛰었어, 반이나 더 뛰어야 되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냐 반밖에 안 남았냐처럼 꽤나 심리적인 이유였지만, 나에게는 반이나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1km만 더 가서 쉬자고 생각을 했고 6km에서 쉬기 시작했다. 아 이제 4km만 뛰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심신의 안정이 찾아왔고 무사히 10km를 뛸 수 있었다. 뛰는 루트에 따라 6km 지점에 쉴만한 곳이 없으면 때로는 7km에서 8km에서 쉴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반 이상은 뛰고 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물론 지금은 쉬지 않고 10km를 뛸 수 있는 러너가 되었지만, 지금도 6km가 지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호흡도 편안해진다. 생리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나에게 6km는 이제 반 이상 뛰었으니 나머지도 조금만 더 뛰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거리가 되었다. 15km, 20km를 달릴 때도 일단 6km를 뛰었으니 10km는 무난히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11km쯤 지나면 이제 4km만 뛰면 15km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자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목표거리의 절반에서 조금 더 뛰고 난 구간이 나의 마음이 아주 편해지는 그런 순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절반에서 좀 더 뛴 그 구간을 꽤나 의식하면서 뛰고 있다.
스마트 워치가 없었다면, 나는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고 10km를 뛰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 워치가 있어서 이 얼마나 뛰기 좋은 세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