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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Aug 25. 2020

'돌밥돌밥'의 향연

자가격리 일지 - 3, 4일 차

8월 20일 (목) - 자가격리 3일 차


1. 아침 8시 반쯤 다 같이 일어났다. 첫째 체온을 재봤는데 열은 떨어져 있었다. 나머지 가족들 체온도 모두 정상이었다. 다행이었다.


2. 아이들 아침 식사로 아내가 계란 간장밥을 해줬다. 계란 간장밥은 계란을 노른자까지 바싹 익힌 다음 간장, 참기름과 함께 밥에 슥슥 비비면 완성인, 아내가 즐겨 만드는 아침 식사 메뉴다. 아내가 나에게도 먹을 거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노른자를 안 익혀 먹는 게 좋아서 아이들이 밥을 먹을 동안 내가 직접 만들어 먹었다.


3. 아침 식사 후 아이들과 장난감으로 간단한 놀이를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금세 다가왔다. 전날 밤 먹다 남은 양념치킨 생각이 났다. 치킨을 아이들이 먹기 좋게끔 잘게 썰고 갖은 채소, 밥과 함께 볶아 치킨볶음밥을 만들었다. 내가 결혼 전에 자주 해 먹었던 자취요리 중 하나였다.


4. 만들어 놓고 보니 치킨 양념이 약간 매콤했다. 둘째에게는 주지 않기로 하고 첫째 밥그릇에만 조심스레 담아줬다. 새로운 음식에는 일단 거부 반응을 보이는 데다 아직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 걱정이 됐다. 역시나, 한 숟가락 먹어 보더니 너무 맵다며 손발을 바들바들 떨었다.


5. 밥을 치우고 다른 걸 줄까도 생각했지만, 완전 못 먹을 정도로 맵진 않은 것 같아서 온갖 칭찬을 해가면서 밥을 먹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첫째는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울 수 있었다.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동력은 역시 칭찬인 것 같다.


6. 저녁에는 콩국수를 먹었다. 장모님 찬스가 있었기에 집에서 먹는 게 가능한 메뉴였다. 손수 콩물을 갈아 페트병에 담아주셔서, 우리는 소면만 잘 삶아 차갑게 해서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7. 하지만 첫째는 면 요리를 입에도 대지 않아서 따로 다른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둘째는 콩물에 밥을 말아주든 소면을 넣어주든, 주는 대로 잘 먹었다. 둘이 생긴 것만 닮았지, 식성은 영 딴 판이다.


8월 21일 (금) - 자가격리 4일 차


1. 아침 식사는 빵을 때웠다. 매번 아이들 밥을 차려 주는 것에 피로도가 슬슬 쌓이고 있었다. 한 끼라도 스트레스 없이 간단하게 먹을 땐 식빵이 제격이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따위는 잠시 넣어두기로 한다.


2. 금세 다가온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에게 고깃국을 차려주었다. 이 역시 장모님 찬스였다. 행여나 우리가 끼니를 잘 못 챙겨 먹을까 봐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보내주신 음식이 없었다면 '돌밥돌밥'의 향연 속에 벌써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3. 점심을 먹고 또 뭘 하며 기나긴 오후 시간을 보내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날 주문했던 아이 장난감이 도착했다. 첫째가 특히 좋아하는 레고 블럭이었다. 레고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해서, 둘이 거실에 앉아 꽁냥꽁냥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놀 수 있었다.


4. 놀이 끝에 찾아오는 건 역시나 식사 시간. 이번에는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삼겹살을 꺼냈다. 에어프라이어가 있어서 고기를 굽는 게 그리 번거롭지 않았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게 문제였지만.


5. 든든하게 배를 채우긴 했는데 뭔가 부족하고 허한 느낌이 들었다. 고기를 덜 먹어서 그랬다기보다는 내일, 아니 앞으로 적어도 일주일은 오늘과 같은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는 절망감, 답답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가격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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