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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ul 13. 2023

글쓰기는 벼락치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 목표는 하나였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 막연한 생각이었다. 피디라는 직업이 어떤 건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도 그냥 하고 싶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인 일이 그것 말고는 또 없어 보였다.


방송사에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은 일단 하고 봤다.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간 것도 그런 차원에서 한 일이었다. (피디들 중에 신방과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됐다.)


대학에 들어간 후 학과 수업, 대외 활동을 통해 영상 제작 관련 경험을 쌓았다. 영상 만드는 일은 예상했던 것처럼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PD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상 제작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만으로는 방송사에 취직할 수 없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글쓰기였다.


대부분의 방송사 입사 시험에는 논술, 작문이 있었다. 그걸 몰랐던 건 아닌데, 수능 준비하는 것처럼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준비가 늦었다. 대학 생활 3년을 탱자탱자 놀다가 졸업을 1년 앞두고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잘 될 리가 없었다. 논술을 잘 쓰기 위해서는 웬만한 시사 상식은 다 꿰고 있어야 했고,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나름의 견해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걸 준비한답시고 신문 스크랩을 시작했는데, 감당이 안 됐다. 신문 한 부를 꼼꼼히 읽어보는 데만 해도 두세 시간이 걸렸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신문을 비교하며 읽어야 한단 얘길 들었다. 정말 난감했다. 그럼 신문만 읽다가 세월이 다 갈 것 같았다. 읽기조차 이렇게 버거운데 논술? 작문?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아마도 2011년이었을 치열함의 흔적들

내 상황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꾸역꾸역 떠밀리듯 하는 읽기와 글쓰기가 잘 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언론사 시험에 줄줄이 떨어졌다.


종합편성채널들이 개국하면서 이전보다 방송사 취업에 기회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게 입사 문턱이 낮아진다는 걸 의미하진 않았다. 차별화를 꾀한답시고 새로운 유형의 문제들이 출제돼 오히려 시험은 더 어려워졌다.


방송사 취업 시장에서 철저히 밟히고 나서 느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분야를 지망하는 건 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다른 루트를 뚫어서라도 방송업계로 가고 싶었다.


졸업과 함께 무작정 외주제작사로 들어가 실무 경험을 쌓았다. 결과적으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몇 달 안 되는 기간이긴 했지만 그 경력의 도움으로 지금 회사에 들어와 피디 명함까지 받았으니.


하지만 ‘읽고 쓰는 일’ 앞에서 또 한 번 패배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상처로 남았다. 활자울렁증. 언젠가는 극복하고 말리라,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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