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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마음으로 없는 길 가려하네

by 샤론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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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소(?)에 맡긴 지 2달 만에 선데이스쿨 교재가 완성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하마터면 포기할 뻔했는데. 마침내 연락이 왔구나 싶어 약속기한에서 2달이나 늦은 것도 용서가 되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맡긴 지 2달 만에 완성되었다고 하면 그 양이 몇천 권쯤 되고 퀄리티도 엄청 좋은 교재인 줄 알겠지만, 이곳은 킬리만자로 시골 마을.

그냥 한 면은 글. 또 한 면은 색을 칠할 수 있는 그림이 전부인, 한국의 아이들은 쳐다도 보지 않을 그저 까만 것은 글이고 하얀 것은 종이인 그런 교재다.


한국에서는 한두 시간이면 충분히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데 어찌하여 2달이나 걸렸을까?

복사를 잘못해서. 제본을 잘못해서. 직원이 도망가서.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이제는 그러려니 할 법도 한데 가끔은 속이 터지고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경우처럼 늦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약속을 지켜준 것이 감사할 때도 있다.

어쨌든 이제는 선데이스쿨 아이들은 자신만의 바이블 스토리 책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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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와서 새삼 놀라웠던 것은 교육환경이었다.

열악할 줄은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 열악했다.

그렇다고 내가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아프리카 시골마을의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선데이스쿨 아이들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마음뿐.

하지만 제대로 가르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공부는 할 아이만 한다는 생각으로 내 아이도 거의 방목해서(어쩌면 방치인가?) 키우다시피 한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재능을 발견해서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게 다였는데,

어느 날 '무엇이 가장 갖고 싶냐?'는 질문에 '책이 갖고 싶다'는 한 아이의 대답에 아이들만의 책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최소한의 노트나 연필은 갖고 있지만 (물론 제대로 된 것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없지만)

교과서도 공용으로 돌아가면서 봐야 하고, 필요한 아이들은 베껴쓰기도 하다 보니 자신만의 책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책,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자신의 생각도 적을 수 있는, 그래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책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성경 이야기를 읽고, 그림을 그리고 묵상도 할 수 있는. 바이블 스토리였다.

한국에 있었다면 인터넷에서 자료도 찾아보고,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도 구하고, 도움도 받았겠지만, 사진 한 장 다운 받으려면 반나절이 걸리는 이곳에서는 인터넷에 널려있는 자료의 도움을 받기는 불가능.

그나마 노트북에 있는 자료들이 바이블 스토리에 관련된 것뿐이라서 다른 시도는 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첫 번째 책으로 바이블 스토리만큼 완벽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선교사님께 스와힐리어 번역을 부탁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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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자신의 책을 갖게 된 아이들은 표지의 jina(이름) 옆에 이름을 써라고 하자 몇 번이나 물어본다.

진짜 가져도 되냐고. 자기 것이냐고.

나는 몇 번이나 대답해 준다.

그래 네가 가져도 되는 너의 책이야. 니 거.


한국에서 가져간 아껴놓은 색연필도 마침내 풀었다.

학교에서 미술과목 자체가 없다 보니 난생처음 색연필이라는 것을 구경하게 된 아이들은 여러 색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신나 했다.


색연필 사용하는 법. 상황에 맞게 색을 칠하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세상에는 수많은 색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너희들은 그 수많은 색들과도 같다는 것을.

수많은 색이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이 된 거라고.

그러니 너희들의 색을 꿈꾸어보라고 가르쳐 주고 싶었다.


오래전 탈북민 아이들에게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의 교가로 알려진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꿈을 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답 없는 그 길을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색을 품고 걸어가길 원하는 마음이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배우지 못하고 배울 수 없어서 꿈꿀 수 없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희망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아이들곁을 지키고자 하는 어른들 역시 많다는 것.

그렇게 서로를 꿈꾸는 이들이 서로를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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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지 않으면.]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 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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