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미를 누리는 기쁨
며칠 전 선교사님이 뜬금없이 탄자니아 온 기념으로 염소나 한 마리 잡자고 하신다.
내가 이곳에 온 지 6개월이 지났는데 이제야?
"덕분에 센터 청년들과 일꾼들 포식 한번 합시다"
더위에 청년들과 일꾼들이 너무 기력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을 쓰이기는 했는데 염소를 잡을 생각은 못했다.
이곳에서 염소를 잡는다는 것이 한국에서 소를 잡는 것 처럼 어지간한 큰 행사가 아니고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한국사람들이 섣불리 소를 잡지 못하듯이 이곳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잡지 않고 사지)
그럴싸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환영'이라는 명분만큼 확실한 게 어디 있겠는가?
(비록 손님이 온 지 오래되긴 했지만)
기분 좋은 제안이었고, 흔쾌히 염소 한 마리 비용쯤은 지불할 의향이 있었다.
단백질 섭취를 거의 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하루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내가 염소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인의 최애고기가 삼겹살이듯 이곳의 최애고기는 염소고기다
문제는 한국인이 삼겹살을 자주 먹을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그렇게 자주 먹지 못한다는 거다.
자주 먹을 수 없는 최애고기를 도축장에서 사다 먹는 게 아닌 집에서 잡아서 먹는다고 하니 센터 청년들과 일꾼들은 오매불망 염소 잡는 날을 기다렸다.
비록 염소고기를 먹지 않지만 눈앞에서 염소를 잡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나 역시 기다리긴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니깐.
언젠가 몽골에서 양을 잡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목에 한 뼘 정도 칼로 그은 상처에 손을 넣어 숨통을 끊는 동안 음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함께 있던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뜨거운 돌에 익혀 나온 양고기는 정말 일품이었지.
양과 달리 염소는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울고 몸부림을 치면서 죽음에 저항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도축 기술자인 요한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숨통을 끊어놓더니 마치 이불빨래를 널듯 늘어진 염소사체를 작대기에 척 널어서는 본격적인 해체작업을 했다.
배를 가르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분리하고 내장을 꺼내고 가죽을 벗겨내는 손길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나는 마치 공연을 관람하듯 꼼짝 않고 옆에 서서 생애 처음 염소 해체쇼를 관람했다.
좀 전만 해도 마당을 뛰어다녔던 염소가 고기와 내장과 가죽으로 뼈로 분리되는 것이 신기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살이 너무 적어서 배불리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걱정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살보다는 내장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대야에 담긴 살코기보다 족히 몇 배는 더 많아 보이는 바케스 한가득 담긴 내장에 눈길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 본 염소의 내장들은 닭똥집. 곱창. 등 부속물을 좋아하는 나의 눈에 썩 내키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저것을 어떻게 먹나? 제대로 씻고 손질을 할 수 있나?
나는 네에마에게 잘 손질해서 푹 익혀서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네에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를 제외한 센터의 가족들 모두는 그날 밤 염소고기로 포식을 했다.
그런데 이튿날 문제가 터졌다.
요한나와 네에마가 탈이 난 것이다.
요한나는 이틀을, 네에마는 일주일을 설사와 구토와 복통에 시달렸고 급기야 네에마는 큰 병원까지 가서 링거를 맞아야 했다.
배불리 잘 먹여주고 싶어서 큰 마음먹고 치른 행사였는데 오히려 배불리 먹은 것이 탈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물과 미음만 먹고 겨우 살아난 네에마는 앞으로는 나의 말처럼 내장을 잘 씻어서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먹어야겠다고 한다.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나의 당부를 무시하고 설렁설렁 후다닥 씻고 요리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죽을 듯한 고생을 하고 나 같으면 쳐다도 보지 않을 것 같은데 다음을 기대하다니.
그래도 맛있었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껏 내장을 먹었다고.
아파도 실컷 먹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 보이는 표정이다.
고통이 덜해지니 별미의 기억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다행이다.
그 좋아하는 고기를 한번 아팠다고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해서.
아픔을 통해 배웠으면 된 거다.
내가 있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은 염소를 잡아서 별미를 누리는 기쁨을 주고 싶다.
그나저나 다음에는 내장을 잘 씻을 수 있도록 밀가루를 사다 줘야 되나?
(언젠가 티브이에서 유명한 곱창집에서 곱창을 손질할 때 밀가루로 빡빡 문질러 씻는 것을 봤는데 염소곱창에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