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소비일기
매주 금요일 밤 퇴근 시간이면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따르릉, 따르릉... "아빠다. 동네 슈퍼 앞으로 나와라." 그러면 전화를 받은 언니와 나는 어린 남동생을 집에 두고 신나게 달려가 그동안 먹고 싶었던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가격표도 보지 않고 잔뜩 골라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양손 가득 무겁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물론 그 과자와 아이스크림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모두 없어져 버렸지만... 금요일 밤이면 슈퍼 주인도 행복하고 어린 우리도 행복한 날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도쿄에 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금요일 밤이면 동네 슈퍼로 향한다. 이제는 더 이상 뛰어가지 않고,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간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먹을 식재료를 찬찬히 고르거나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가끔 사는데 나는 주로 크림브륄레 아이스크림, 크레페 아이스크림, 녹차맛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빼빼로 등을 고르고, 남편은 언제나 감자칩과 콜라를 산다. 어릴 때처럼 가격표도 보지 않고 마구잡이로 고르는 일도 없고, 먹는 걸로 싸우거나 경쟁하듯 급하게 먹을 일도 없는 지금 생각해 보면 금요일 밤에 슈퍼에 가자고 전화하는 건 아빠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거 같다. 슈퍼에서 돌아와 장 봐온 것들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워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먹으며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