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소비일기
대체로 나쁜 꿈으로 눈뜨는 일이 잦은 나는 보통 꿈에서 깨어나면 지난밤 꿈들을 기억하지 않으려 애쓴다. 베란다에 나가 아침의 햇빛과 차가운 바람을 맞고, 방안에 돌아와 느린 음악을 틀고 주전자에 물을 올려 한국에서 사 온 오설록의 청귤차를 마시며 모닝페이지를 적는다. 내 안의 고요함을 꺼내고 싶어서 최근엔 어설프게 명상도 시작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방해하지만 요가하면서 배운 대로 가능하면 호흡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생기면 일단 걷는다. 나무랑 하늘 같은 풍경을 보면 어쩐지 쉬는 느낌이 들고, 다른 동네에 가면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자주 산책하려고 한다. 헤드폰과 필름 카메라, 읽을거리, 노트와 볼펜, 지갑, 핸드폰 등을 챙겨 집을 나선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쿠게이다이가쿠에 다녀왔다. 가쿠게이다이가쿠는 키치죠지에서 전철로 40분 정도 걸리는데 내가 좋아하는 빈티지숍과 그릇 가게, 카페와 책방이 있기 때문에 한 시간 거리지만 종종 찾아간다. 그릇 가게 yuyujin에 갔다가 써니보이북스에 가서 POPEYE의 지금 듣고 싶은 음악 특집을 167엔에 한 권 사고, 근처에 있는 빈티지숍 FINN이랑 허밍 버드 커피를 갔는데 연말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있었다. 결국 조금 먼 팩토리 라보에 가서 차가운 녹차 라테를 마시며 알랭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었다. 타인의 도움 없이도 좋고 싫은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수지의 부러움을 살 만한 자신감이 좋았다. 그녀는 음식 비평가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폴란드의 식당을 런던 최고로 뽑았고, 세상이 칭찬하거나 관심을 쏟지 않는 남자라도 사랑했다고 했다.
도쿄 최고는 아니지만 꽤 맛있는 텐야에서 따뜻한 우동과 새우 텐동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시부야에서 내일 남편과 먹을 크루아상과 마늘 바게트를 샀다. 적당한 햇살과 바람이 기분 좋았던 외출에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좋아하는 바디 로션을 천천히 바르고, 젤라토피케에서 산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책상에 앉아 고요히 보내는 나 혼자만의 시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이 시간이 좋다. 종종 촛불을 켜고 밤을 보내는데, 그런 시간도 무척 좋아한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가만히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여러 권 돌아가며 읽고, 잡지에서 음악을 찾아듣는다.
일본은 플레이리스트 특집 잡지나 책이 꽤 많아서 찾아 듣는 재미가 있다. 오늘 산 잡지에 나온 플레이리스트 중 Sidney Gish의 Sin Triangle과 폴 메카트니의 Let'Em In을 들으며 일기를 쓴다. 별 다른 내용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저 펜과 종이가 마찰하는 소리나 손을 움직였을 때 글자가 적히는 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저녁 약을 먹고, 유튜브로 영상을 몇 개 보다가 무인양품의 레몬향 아로마 오일 디퓨저를 켜고 잠을 청한다. 보통 숙면을 돋는 아로마테라피로 라벤더 오일을 추천하지만 나는 레몬향이 좋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곤히 잠든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오늘밤은 푹 잘 수 있을 거 같기도 했다.
SUNNY BOY BOOKS
12 : 00 - 7 :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