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 크라이스트처치 도시의 또 다른 시작.
당신의 터전이 있는 바로 그곳에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면. 누구나 그렇듯 상상도 못 할 일이며 뉴스에서나 가끔 접하게 되는 일 일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다. 2010년 내가 살고 있던 곳에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뉴질랜드의 지진대는 원래 북섬에 자리 잡고 있었고, 지진이 일어날 곳을 예상한다면 수도인 웰링턴이었기에 그만큼 지진대비가 철저한 도시중 한 곳이었다. 물론 예외 또한 예상했어야 했지만.
남섬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라는 도시는 2010년 9월 4일에 7.1도의 강도 높은 지진이 찾아왔고, 새해를 맞이한지 얼마 안 된 2011년 2월 11일에 6.3도의 지진이 다시금 크라이스트처치를 흔들었다. 물론 처음 지진보다는 약했지만, 타격은 훨씬 컸다. 이미 첫 지진과 잦은 여진으로 인해 흔들린 건물들은 두 번째 지진을 맞이하게 되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물론 내가 건물이 무너지는 한복판에 있진 않았지만, 홈스테이 안에 진열되어 있던 액자들과 그릇들이 한꺼번에 바닥을 향해 떨어져 유리조각 투성이가 된 상황을 보며 바깥의 상황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됐다. 흔들림이 잠깐 멈춘 사이 2층에 있던 나는 1층으로 재빨리 내려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문 가까이에 몸을 붙인 뒤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벽을 보며 멈추기를 바랐다.
다행히 크라이스트처치에는 고층 건물들이 없는 편이라 더 클 수 있었던 인명피해는 피했지만, 그래도 지진으로 인해 약 185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 어학연수를 온 27명의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진은 짧았지만, 지진이 남기고 간 흔적은 복구라는 긴 숙제를 남겼다. 우선 도로는 울퉁불퉁 해져 차들이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으며 쫙쫙 갈라진 도로 틈 사이에선 어마어마한 진흙들이 화산처럼 나오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처치 곤란이었다. 도로뿐 아니라, 다른 지역들에 비해 지진 타격이 컸던 지역 가정집들은 카펫을 뚫고 나오는 진흙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이사를 해야만 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명소인 'Cathedral Square' (대성당 광장) 또한 큰 타격을 받으며 많은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때 물의 소중함을 알았다. 물이 정상적으로 나오기까지 내가 살고 있던 동네는 4-5일 정도 걸렸다. 아직도 5일 만에 머리를 감은 후의 느낌을 기억한다. 그 밖에도 순간 끊긴 전기라던지 울퉁불퉁해진 도로 그리고 그나마 피해를 덜 입은 지역 사람들과 학교들은 그만큼 피해가 많은 곳에 찾아가 돕기도 했으며, 학교를 합쳐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5년이 지나도 도시의 황폐함은 아직 남아있으며 아직도 잊을만하면 여진이 찾아온다. 덕분에 우리는 처음 지진 때 보다 침착하게 대응하는 법을 배웠고,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작년 4월, 네팔에 큰 지진이 발생했고 인명피해도 컸다. 두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찬 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크라이스트처치에 거주하고 있던 한 부부는 바로 네팔행 티켓을 끊어 거주할 곳을 잃은 그들에게 텐트식의 작은 집을 지어주기 시작했으며, SNS를 통해 네팔의 상황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했다. 그들은 크라이스트처치 도시가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지진의 피해를 경험해본 자들로써 네팔인들을 이해하고 돕고 싶었기 때문에 직접 네팔로 향한 게 아닐까.
물론 크라이스트처치에 황폐함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5년의 꾸준한 복구 덕에 새로운 버스 터미널이 작년에 완공되었으며, 새로운 카페들과 레스토랑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앞으로도 복구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