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나는 너희를 처음 만났다. 보드라운 털의 세련된 흰 강아지 한 마리와 얼굴이 온통 찌그러진 너희 둘이 있었지. 아저씨는 너희가 남매라며 데려가려면 꼭 두 마리를 데려가야 한다고 하셨어. 난 너희를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 아빠가 몇 번이나 다시 물어도 난 그렇다고 했어. 나중에 듣고 보니 너네는 100만 원으로 그때로는 엄청 비싼 강아지였어. 강아지만 사주면 똥이고 오줌이고 다 치우고 목욕도 시키겠다고 조르고 졸랐고, 그날 너희 두 마리를 내 품에 안고 왔지.
역시 나의 공약은 공약으로만 끝났지만. 후후. 곰순이와 곰돌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너희는 이름만큼이나 곰 같았어. 약은 구석은 하나 없고 어찌나 순하고 겁이 많던지, 그러면서도 나를 어찌나 따르던지 난 착하디 착한 너네의 마음에 쏙 빠졌단다. 나의 최고의 친구가 되어주었지.
먹는 걸 엄청 좋아하는 너희는 사료를 주면 후다닥 한 그릇 식사를 마쳤지. 내가 과자를 먹을 때면 그 불쌍한 얼굴로, 동그란 눈망울로 내 앞에 앉아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충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지. 콧방울은 촉촉해지고 커다란 눈망울도 촉촉해지고, 과자가 다 사라질까 봐 조바심이 나서 다시금 바로 고쳐 앉아보기도 했지. 그렇지만 늘 기다렸어. 어린 수수에게 단 한 번도 대드는 법 없이.
그게 미안해서 너희가 잘 때를 기다렸어. 살금살금 까치발로 걸어 목표물을 잡았지. 그 적막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조심스럽게 과자봉지 한 켠을 가위로 살짝 오려냈을 뿐인데 어쩜 귀신같이 알고 귀를 쫑긋 대고 눈을 번쩍 뜨며 달려오는지.
내가 올 때까지 소파를 타고 올라가 창틀에 앉아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던 모습, 겁주려고 내가 손을 들면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을 감고 콧물까지 튀기며 무서워하는 모습이 떠올라.
잘 때는 꼭 살을 조금이라도 붙이고 코를 드르렁거리며 잤지. 나는 네가 턱을 내 팔에 괴고 자는 것이 좋았어. 팔이 저려와도 따뜻하고 적당한 무게가 좋아 빼고 싶지 않았어. 나는 엎드려 책을 읽고 너는 나의 몸 한구석 조금이라도 대고 자고. 그 순간이 참 정답고 따뜻하고 외롭지 않았어.
네 등을 덥석 잡는 상상을 하면, 등가죽을 집으면 등과 살이 분리되어 잡히는 그 느낌이 손에 떠올라. 축축해진 너희 코 주변 주름 사이를 닦아주는 내 손가락, 고소한 발바닥 냄새를 좋아해 코를 박고 킁킁거리던 순간, 태어났을 때 생겼다는 목 언저리의 흉터도 생생하다.
내 코 언저리에 아직도 너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곰순이와 곰돌이 남매지간
곰돌이는 어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어. 난 처음 내 가슴이 절절히 찢기는,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만났다.
그리고 곰순이가 아기를 낳고, 그 아기인 똘순이가 또 아기를 낳아 할머니가 될 때까지도 우린 그렇게 함께였지. 새끼를 갖고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도 너를 보고 배웠고, 그 새끼를 다 키우지 못하고 헤어져야 하는 절절한 아픔도 너와 함께 느꼈다.
곰순이와 그녀의 아이들인 똘순이와 똘똘이. 곰순이는 주둥이가 짧고 혀가 길어 늘 혀가 나와 있었다.
사정에 의해 우리는 이별을 하게 되었어. 나는 한참이나 타닥타닥 거리는 너의 발톱과 방바닥이 부딪히는 그 소리를 환청으로 들었다.
나는 너와 함께, 내 유년시절을. 그렇게 만남과 함께함의 기쁨. 그리고 이별과 죽음의 슬픔을 절절히 느끼고 배웠다.
우리 집은 그 뒤에도 여러 개와 인연을 했지. 종자모를 개도 있었고, 요크셔테리어, 시츄, 푸들까지. 그러나 나는 너희만큼 사랑스러운 개를 본 적이 없다. 지금도 광고에 나오는 퍼그를 보면 눈을 떼지 않고 보고, 좀처럼 보기 힘든 퍼그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가슴이 쿵쾅거려 발을 떼지 못해. 우리 딸은 그림책에서 그림으로 나온 퍼그만 보아도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개다~"라고 외치지. 그리고 덧붙여. " 나도 제일 좋아하는 개야." 퍼그를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 나의 딸이 이렇게 말을 해.
그런데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은 내게 퍼그를 키웠으니까 그렇게 여기는 것이지 본인은 단 한 번도 이 개가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세상에. 나는 퍼그의 우둔함을 너무 사랑한다. 개들은 종자마다 그 특성이 있는데, 착하디 착하디 착하다 못해 멍청하기까지 한 그 우둔함을 너무나 사랑한다.
나는 이 책을 보자마자, 이 작가는 퍼그를 키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으로는 정말 퍼그가 제격이다. 다른 개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쏟아질 것 같은 반짝이는 눈망울 하며, 조금은 주눅 든 것 같은 여린 표정 하며, 좋은 일에는 자존심과 도도함 따윈 없고 해맑게 좋아하는 개. 딱 퍼그의 성향이 잘 그려진 책이다. 여기 나오는 퍼그의 얼굴을 보면, 섬세하게도 내가 본 퍼그의 얼굴들이, 성격들이 담겨있다.
이 책의 퍼그는 집도 없고 주인도 없는 개다. 목줄을 한 다른 개들을 부러워하며, 외로운 퍼그는 자신을 돌봐줄 사람, 자신만의 '행복의 목걸이'를찾아 헤맨다. 그러는 중에 멸시를 당하고, 쫓김을 당하기도 한다. 그의 곁을 늘 따르는 한 마리 꿀벌의 안내로, 드디어 퍼그는 꽃목걸이를 만드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가 따뜻한 눈빛을 건네며 걸어주는 꽃목걸이는, 퍼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어여쁜 목걸이이다.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 곰순이와 곰돌이를 만났다. 그리워서 목울대가 콱 막힌 듯하고, 이 책의 퍼그의 외로움에도 마음이 아팠다.
나의 삶에서 정말 많은 부분을 함께한 친구인데, 아마도 지금은 어딘가에 없겠지. 우리가 헤어진 뒤에 너의 삶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목이 멘다. 그때 엄마, 아빠를 더 졸라 너를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래서 내가 보지 않았던 너의 삶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소녀가 준 꽃목걸이를 받은 이 퍼그처럼. 너도 어딘가에서, 이런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듬뿍 사랑을 받으며 그렇게 행복한 삶을 마무리 지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 책의 표지를 바라볼 때마다 네가 자꾸 떠오른다. 표지를 보는 순간순간마다 눈물이 핑돌고,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자꾸 눈물이 흐른다. 분명히 눈물로 콧물로 촉촉해졌을 너의 주름 사이를 자꾸 닦아주고 싶다. 나에게 너는 있는 듯 없는 듯, 늘 함께 나를 지켜주었던 꿀벌 같은 친구였음을. 그리고 다정한 꽃목걸이 같은 친구였음을 꼭 전해주고 싶어. 나의 유년시절, 나에게 와주어 정말 고마워.
그립다. 네가 너무 보고 싶다. 딱 한 번 다시 만져보고 싶다. 안을 수 없다면, 딱 한번 어린 시절처럼 등가죽을 잡아라도 보고 싶다. 자꾸 내 콧가에 너의 냄새가 맴돌고, 내 귓가에 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