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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Jun 25. 2023

[수수한그림일기]싫어하던 사람을 좋아하게 만드는 일이란

2023.6.24

바이올린을 좋아하지 않고, 유튜브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이 둘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바이올린 연주를 유튜브로 보면서 걸을 줄이야.


초등학교 때 친구가 바이올린을 연주한 일이 있다. 그때부터 바이올린이 싫어졌다. 미안하게도. 친구 앞에서는 너무나 잘 켠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사실 너무나 괴로웠다. 매직으로 끽끽 대는 소리,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를 상상만 해도 미간에 인상을 지어지는 나로서는 그 예민한 소리가 견디기 어려웠다.

큰 꼬마가 어릴 때 바이올린도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짧게 배우고 코로나로 그만두었지만, 사실 아이에게 굳이 집에서도 켜보라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나는 바이올린과 아주 먼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다.


한 곡으로 그 음악가에게 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악기 자체를 싫어한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을 단 한 곡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니까 평생을 굳게 믿고 있었던 틀을 흔드는 경험이었다.

아니야. 너는 바이올린을 좋아해.

엄밀히 말해서, 그가 연주하는.


첫 만남은 양인모의 차르다시 연주였다.

작은 꼬마와 열정적인 차르다시 연주를 감상하면서 공중에 가상의 활을 켜는 시늉을 했는데 시늉만으로도 팔이 아플 지경이었다.


요즘 아침부터 잠들기까지 틈틈이 그의 연주를 배치한다. 얼마 전 피드에 댓글에

'귓구녕에 그의 연주를 넣어 bgm으로 깔고 싶어요.'라고 달았는데 이렇게 주야장천 듣고 있자니 그 꿈이 실현되었다. 우아한 유령이 듣고 있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종종 자동 재생된다.


다른 일을 하면서 들을 때와 걸으며 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른데, 걸으면서 들을 때 바이올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분명 가사 하나 없는 선율인데 음악마다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는 여름밤 요가 가는 길은 지루한 줄을 모르겠다.

우아한 유령을 들을 때에는 피아노를 치는 시늉이 손끝에서 나오는데

차르다시를 들을 때에는 지휘하는 시늉이 손끝에서 나온다.

물론 엉망진창의 연주와 지휘 시늉이다.


요즘 내 귀를 점령한 음악의 지분은 다음과 같다.

양인모의 우아한 유령 40

양인모의 차르다시 20

임윤찬의 녹턴 20

양인모의 죽음의 무도, 파가니니 등 나머지


0에서 좋아하는 사람으로, 좋아했던 사람에서 더 좋아했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싫어했던 사람을 이렇게 푹 빠지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란.

내 삶에서 이것이 가능한지도 나도 몰랐는데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 중이다.


식상한 말이지만 뱉을 수밖에 없는 말.

예술가는 진정 이로운 존재다.

말모인모 인모말모.

내가 요즘 몇 번이고 이렇게 예찬합니다.

캬!라는 감탄사와 함께


아. 맞다.

나무위키에 나온 인모님 MBTI가 INFP던데 정말일까.

이거 보고 까무러칠 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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