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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Apr 13. 2020

척쟁이들

아내의 일기

우리 집에는 척쟁이들이 산다. 있는 척, 잘난 척, 자상한 척, 세상 잘난 척은 다 하는 척하기 대왕 남편부터 똑똑한 척 막내까지 자존감 낮은 나에게는 이런 척쟁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세상 자상한 


  “좋겠다. 남편이 그렇게  챙겨주니 얼마나 좋아. 아침에 아이들  잡고 학교에 데려다주더라. 우리 남편은 애들 학교에 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알아.


  실상을 모르는 옆집 아줌마 아침부터 호들갑이다. 남편이 그렇게 좋아 보이면 데리고 가서 살아 보시지요. 하루만 살아보면 그런 말 못 하실 텐데.

  우리 남편이 얼마나 말을 얄밉게 잘하는지 웬만한 여자 저리 가라에요.


  “당신을 선택하기 위해 세상의 다른 여자를 모두 포기했어.”

  기가 차지요. 자기가 잘나 봐야 얼마나 잘났다고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본인을 좋아할 줄 아나 봐요.


  “ 아니면 남이야.”

  참 인정머리가 없어요. 본인 아니면 모두 남이랍니다. 부인이고 자식이고 본인보다 우선할 수 없다네요. 부성애라는 걸 갖고 있는 사람인지.


  “돈이 마빡에서 튀냐?”

  화장실에 불 안 끄고 나왔다고 등 뒤에서 한 마디 합니다. 화장실 불 안 끈다고 돈이 얼마나 절약된다고 그러는지. 요즘에는 척쟁이 딸이 아빠를 닮아 불을 끄고 다녀요.

  며칠 전에는 볼일을 보고 있는 데 누가 불을 껐어요. “누구야!”라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죠.

“앗, 엄마 미안 화장실에 있는지 몰랐어.”

딸이 요즘 고스란히 아빠 행동을 따라 합니다.


이런 척쟁이 대왕 하나만으로도 넘치는 데 여기 아들이 하나를 더합니다.


세상 순진한 


다른  아이들이랑   놀아주고 아이가  맑더라. 어쩜 그렇게  없이 컸는지 고학년 아이 같지 않아.”


같은 반 엄마가 이렇게 톡을 보냈습니다. “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먼저 나옵니다.

“야! 네가 나보다 한 조각 더 먹었어. 아까 네가 두부도 한 조각 더 먹었잖아!”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아직도 뽀로로를 먹는 순수한 아드님. 동생이 피자 큰 조각 먹는다고 다투고 있습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맑고 티 없어서 좋겠데요. 저학년 아이들이랑도 잘 놀아줘서 얼마나 좋냐고 하지요.

  하지만 정신 연령이 낮고 철이 아직 안 들어 보이는 건 엄마의 욕심 어린 눈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세상 똑똑한 


  “  딸은 모르는  없더라. 우리  아이가 숙제를 몰라서 물어봤는데 인터넷에 나오는 책까지 자세히 알려주더라. 어쩜 그렇게 똑같은 수업을 듣고 다르게 배울  있는지. 학원  보내도 딸이 그렇게  부러지니 세상 부러울  없겠어.”


  우리 집 꽃돼지 딸내미 이야기예요. 투 턱을 넘어 쓰리 턱을 향해 가고 있어요. 남들은 다들 똑똑하데요. 그래요. 책을 정말 많이 봐서 그런가 봐요. 자기 책은 물론 엄마 요리책까지 빼앗아보고 있으니까요. 요즘엔 제발 책 좀 그만 읽으라고 합니다.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매번 책만 보고 있으니까요.

  세상 잘 나신 따님이 오늘은 기부를 갖고 딴지를 겁니다.

“엄마도 기부해?”

“응, 10년 전부터 월드비전에 2만 원씩 기부하고 있어.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데 쓰인다고 하더라. 처음에 후원한 아이는 이제 많이 커서 다른 아이로 바뀌었데. 전에 그 아이는 고맙다고 편지도 보내줬어.”

나는 그러면 당연히 본인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지라는 딸의 답변을 기대했으나

“아니. 그럼 한 달에 2만 원이면 일 년에 24만 원에 10년이면 240만 원 아니야? 앞으로 엄마가 80년을 살면 2천만 원이 넘는 돈 아니야?

  나한테는 장난감 사줄 돈 없다. 옷 사줄 돈 없다. 맛있는 거 사줄 돈 없다더니 어떻게 남한테는 그렇게 막 퍼줘?”

어이가 없었다. 정말 저 꽃돼지가 내 뱃속으로 나은 딸이란 말인가? 세 자릿수 연산은 못하면서 돈 계산은 어찌나 잘 돌아가는지?

“한 달에 2만 원 이래야 너 과자값에도 못 미치는 돈이야. 그거 2만 원 안 한다고 그 돈이 너에게 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어쩜 너는 그렇게 네 생각밖에 못하니?”

정말 인정머리라고는 1도 없는 녀석이다. 저 녀석 키워서 어디다 쓰나?


자존감 낮은 엄마는 척쟁이들 밥하러 간다. 척쟁이들 오늘 밥상에서는 또 뭐라고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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