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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Mar 23. 2022

빈자의 세금, 복권

아들에게 들려주는 통계

  아들이 나라 잃은 백성의 표정으로 거실 책상에 앉아 있다. 보아하니 수학 공부를 하는 모양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 부모가 수학 관련 학과를 졸업했기에 설마 산수 때문에 고민하겠나 했는데, 우리 아들은 간단한 계산 문제 하나를 두고 정말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런 아들이 내일 세상이 망할 듯한 말투로 나에게 묻는다.


“아빠 수학 공부해서 대체 어디다 써먹어?”


  수학 공부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잘못된 판단은 막아준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그냥 열심히 공부하란 이야기는 그다지 아들의 마음에 와닿지 않아 보였다.

  아들의 생각과 달리 수학으로 밥 벌어먹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아들에게 수학은 그저오래된 필요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테다. 그래서 아들이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돈과 관련된 복권 이야기를 꺼냈다.


#1


  사무실 근처에 잘 나가는 복권 집이 하나 있다.

1등 당첨만 10번이 넘었다기에 금요일쯤이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산다. 택배로 받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아주 호황이다.

#2


  1등 당첨금이 생각보다 크지 않으니 같은 번호의 복권을 여러 장 산다고 한다. 당첨이 되면 본인이 몇 배 더 받지 않겠냐는 것이다. ​


#3


  로또 번호를 찍어주는 회사를 애용하시는 분이 주위에 계신다. 그 회사에서 찍어준 번호 중에 1등이 나왔다며 돈을 내가면서 번호를 받는다. ​


 ​

  아마도 확률에 대해서 공부했다면 위의 사례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것이다. 하지만 아들에게 물으니 그 사람들이 맞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 나름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었다.

 #1


  1등 당첨자보다 복권 가게 주인이 돈을 더 벌었을 것이다. 복권은 결국 확률 게임이다. 10만 명에 한 명 당첨된다면 10만 장을 판 가게에는 1명이 100만 장을 판 가게에는 10명이 당첨되는 게 정상이다.


  그러니 복권의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1등의 숫자도 늘어난다. 1등 당첨 소식에 복권 판매량이 늘고 1등 당첨의 숫자는 더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즉 복권 가게 주인만 좋은 일인 셈이다. 어느 가게에서 복권을 사든 확률은 동일하다. 다만 심리적으로 더 당첨될 것 같은 느낌이 들뿐​


#2


  같은 번호로 여러 장을 사면 확률이 조금 올라갈지 모르겠다. 정확히는 기댓값이 올라간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모수가 워낙 크기 때문에 1장이든 10장이든 확률상은 아주아주 미세한 차이일 뿐이다. ​


#3


  복권회사 이야기로는 80만 명의 회원이면 그중에 1등이 나온단다. 1등 복권 집이랑 비슷한 원리다. 회원 1명당 10장씩 산다면 8백만 장이니 1등 확률에 근접하는 셈이다. 그러니 1등이 나올 수밖에.


  만약 복권회사가 정확히 1등을 예측할 수 있다면 굳이 그걸 회원에게 팔까? 자신들이 1등만 사서 당첨금을 다 가져갈 것이다. 이게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  아들에게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들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조금 더 머리가 크면 이해하려나?


  워런 버핏이 말했다.

“복권은 빈자의 세금이다”

  복권으로 모인 돈의 절반이 사회를 위해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 세금이란 표현이 맞지 않을까?​


  복권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에 잠깐 젖을 수 있는 대가로 생각해야지, 실제 돈을 모을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지 말자.

  아들아 그러니 꼭 수학 공부하렴.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허황된 숫자놀음에 속는 너를 보게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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