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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Apr 24. 2019

자리를 능력으로 착각하지 말자

호가호위-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선배가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일하러 가면 다른 사람들이 너를 두려워할 것이야.

여기서 일하는 많은 직원들은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서 두려워하는 것이라 오해를 하지.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건 직원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직원이 현재 위치한 자리의 힘과 그 뒤에 있는 조직의 힘이지.

다른 직원처럼 착각을 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네가 가진 실력을 두려워하는지 아니면

배경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해."


입사 초기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어깨에 힘을 주지 말고 다니라는 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회사 생활 20년이 되어가니 선배가 했던 그 말이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어느덧 주위에 자의든 타의든 퇴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메타인지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직장 안에서 잘했으니 밖에서도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실력은 본인이 모르는 보이지 않는 지원 요인들이 있다. 내가 속한 조직이라는 배경이 주는 힘, 다른 사람과의 협업을 통해서 발휘되는 능력, 내부적인 자원을 활용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 등 내가 해내는 일은 순수하게 자신만의 실력이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의 자원과 힘이 함께 결합되어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진짜 실력은 퇴직하고 나면 바로 알 수 있다.

퇴직하는 순간 조직과 위치가 나에게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되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자리가 아닌 능력으로 평가하게 된다.


그때 자신의 진짜 실력이 나오게 되고 자신의 기대와 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평가절하되면 좌절하게 된다.

본인이 가졌던 권력이 작장에서의 위치가 주는 힘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을 많이 가진 곳에서 퇴직한 사람일수록 자꾸만 전 직장의 명함을 강조하게 된다.


퇴직한 선배들이 물이 빠지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선배들은 자리가 주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물이 빠진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물들어 있는 조직의 힘이라는 물이 빠지는 시간 말이다.

짧게는 2년, 보통은 5년 정도 걸리면 물이 빠진다고 했다.

그렇게 물이 빠지고 나서야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깨닫고 자중하게 된다고 들었다.


자리에 있는 순간마다 나는 늘 나에게 질문한다.

“능력이 없어서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인가?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여 내가 배우지 못하는 것인가?”

내가 위치한 곳을 능력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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