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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Oct 05. 2022

이토록 정확한 오답

케이팝 댄스에게 바치는 찬사



 내가 처음 케이팝 안무를 딴 건 원더걸스의 ‘텔 미’였다. 당시엔 나 말고도 거의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텔 미’를 출 수 있었다. 텔 미 텔 미 테테테테테 텔미. 어깨를 흔들면서 스텝을 밟았던 11살의 나. 아직도 나는 그 춤을 그대로 출 수 있다.


 방과후 수업에서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돌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방송댄스를 익혔다. 춤에 꽤 진심이었던 나는 다른 사람들의 커버 영상(라떼는 유튜브가 아니고 UCC였다)을 보며 ‘저 동작은 저렇게 하는 게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며 머릿속으로 훈수를 두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맹랑했다.


 하지만 내 춤에는 어마어마한 단점이 있었다. 바로 거울모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돌이 오른손을 뻗으면 나는 왼손을 뻗는다. 왼쪽으로 돌면 나는 오른쪽으로 돈다. 내가 어렸을 땐 거울모드 영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있었는데 그건 다른 사람들이 커버한 영상이었다. 나는 그걸 보기가 싫어서 그냥 반대로 추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나만 보는 거니까.


 그리고, 내 춤에는 기본기가 전혀 없다. 내 몸은 근육이 없고 흐물텅하다.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마치 방을 흘러다니는 것 같은 몸짓. 동작은 정확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매한, 틱톡 영상은 절대 찍을 수 없는.


 춤 연습실에도 가서 뉴진스의 ‘하입보이’나 아이브의 ‘러브 다이브’ 같은 노래의 안무를 연습했다. 거울 속 나는 꽤나 그럴듯한 몸짓을 하고 있었지만 영상으로 찍어 보면 엉망이었다. 원래 다 이런 건가? 나는 가볍게 절망하며 다신 영상으로 나의 춤을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춤을 출 것이다. 춤만큼 오래 지속하고 있는 취미는 없다. 나는 계속해서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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