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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Jun 20. 2023

1년에 책 100권 넘게 읽는 여자의 독서 연대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활자 중독'의 씨앗이 보였던 사람



  이제 드디어 책 이야기를 해야겠다. 책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미취학 아동을 지나 당당히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처음으로 혼자서 책을 대출한 뒤, 책이 너무 재밌어서 복도를 걸으며 읽었다. 복도를 다 걷고 계단 앞까지 당도했을 때,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담임 선생님은 이제 그만 교실로 들어오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책에 빠져 계단에 부딪칠 뻔한 나를 선생님이 정신 차리게 해주신 거다. 초등학교 때의 일들은 거의 대부분 흐릿하지만, 이날의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독서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쉬는 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온 뒤 집에 돌아와서 책을 읽는 일상을 반복했다. 점심 시간에는 친구들과 놀아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초등학생 땐 독후감을 써야 하는 숙제가 많았기 때문에 독서를 하고 책에 대한 감상을 쓰는 일이 습관이 됐다.     


 중학교에 올라간 후로는 친구들과 노는 게 너무 재밌어서 책을 등한시했다. 그때는 책을 읽으면 놀리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 책을 읽겠다고 집에서 책을 챙겨가면 같은 반 남자 애들이 “야, 네가 무슨 책을 읽냐”라며 그 책을 뺏거나 책을 읽지 못하게 장난을 쳤다. (그땐 나름 친해서 한 행동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연한 괴롭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 때는 독서 암흑기다. 이때 가장 책을 많이 읽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놓쳐버렸다.     


 고등학교는 인문계 여자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나는 공부를 하는 대신 책 읽기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100권 넘게 대출했고, 연말에 다독왕이라며 상품권도 받았다. 이때는 반 친구들이 다 책을 좋아했어서 서로 책을 추천하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나는 기욤 뮈소나 넬레 노이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등을 열심히 읽었다. 김영하나 김연수, 황정은이나 한강 같은 한국 작가들도 대부분 이때 알게 됐다.     


 대학교를 철학과로 진학한 건 필연이었던 것 같다. 교과목 중에서 문학과 윤리와 사상을 제일 좋아했고, 책까지 좋아했으니 말이다. 철학과로 진학한 후로부터는 (당연하게도) 더욱 폭넓은 독서를 하게 됐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국어국문학과 복수 전공을 시작했고, 시창작 수업을 들으며 시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교수님이 해주신 칭찬 덕에 시인이 되겠다며 거의 모든 국내 시인의 시집을 흡수하듯 읽었다. 아직도 시인이 되진 못했지만, 이때의 감각을 자양분 삼아 시를 쓰고 있다.     


 책 읽기가 습관이 된 덕분인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1년에 100권은 꾸준히 읽고 있다. 덕분에 애용하는 인터넷 서점 회원 등급은 늘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을 유지 중이다. “독서는 내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라는 수전 손택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는 내가 나인 게 싫을 때, 삶이 어려울 때 책으로 도피했다.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나 임솔아의 <최선의 삶>을 읽으며 울었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이 지금 나의 세포를 구성하고 있다. 나는 나를 돌보기 위해, 세상을 조금 더 잘 사랑하기 위해 독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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