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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Jun 05. 2023

저도, 한때 '공시생'이었습니다

'예쁜 나이 25살'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나는 대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막연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공무원 시험 준비하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고, 나는 빼도박도 못하는 인문대 학생이었다. 그래서 학점을 잘 따는 수업보다는 듣고 싶은 수업을 들었고 심리학과나 사회학과, 신문방송학과 같은 타과 수업도 많이 들었다.


  막연한 생각이 구체화됐던 건 2020년 11월의 일이다. 24살이었던 나는 졸업유예를 신청하고 공무원 시험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었다. 막상 진짜로 수험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두려웠기 때문에 결정을 미뤄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미 대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이 여럿 있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험을 준비해야겠다는 결심을 서서히 굳혔다. 그리고 그해 12월 1일에 프리패스를 등록하고 교재를 구매했다. 진정한 수험 생활의 시작이었다.


  학창시절과 대학생 때 모두 큰 노력을 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살았기에 공무원 시험은 정말로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매일 오전 9시 반에 일어났고, 오전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친구와 캠을 켜고 공부하는 '캠스터디'를 했다. 순수 공부 시간은 9시간에서 11시간 내외. 사실 '무슨 수험생이 10시부터 공부를 시작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당연히 나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공시생들 정말 많았고, 내가 게을렀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오전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공부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회사원을 생각하면 9to6가 일반적이고, 10시에 출근하면 7시까지 일하는 게 보통이니까. 심지어 수험생에게는 주말, 공휴일, 연차도 없다. 나는 남들보다 다소 느슨하게 공부하는 것이었는데도 온몸이 아팠다.


  더군다나 12월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통 국가직 공무원은 3월이나 4월에 시험이 있고, 지방직 공무원 시험은 6월이다. 6개월 안에 끝을 봐야 하는 아주 무모한 도전인 것이었다. 내 머리를 믿었던 건 아니고, 그냥 내가 가진 체력 안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핸드폰도 폴더폰으로 바꿨고, 카카오톡은 1주일에 한 번씩 들어갔다. 공부가 하기 싫어질 때면 침대에 눕는 게 아니라 '고지전'이나 '명량' 같이 한국사 공부에 도움될 만한 영화를 봤다. 아파서 쉬었던 이틀을 제외하고는 쉬는 날 없이 공부했다. 늦게 시작했기에 더욱 빨리 따라잡아야 했다.


  6개월 동안 치열하게 준비했고, 2021년 지방직 시험에선 나름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영어를 제외하고 전부 90점이 넘었다. 하지만 영어에서 마킹 실수를 하고, 국어에서 내가 맞혔던 정답이 전원 정답으로 인정되는 일이 생겨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당연히 나에게 실력이 더 있었다면 이런 실수가 없었더라도 합격했을 것이다. 친구들 전부 성적이 아깝다며 다시 도전해보라고 했고, 나도 1년 더 공부해보고 싶었지만 그냥 공무원 시험은 놓아주기로 했다. 1년을 더 공부한다고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이렇게 1년 더하면 건강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질 것 같았다.


  짧았던 수험 생활을 뒤로하고, 7월부터는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국민취업제도의 도움을 톡톡히 봤다. 처음에는 서류 합격도 잘 되지 않았지만, 자소서에 공을 들이고 자격증도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서서히 나를 불러주는 회사가 늘어나서 전주, 서울, 파주 등 곳곳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공무원 시험 준비 기간과 취업 준비 기간이 인생에서 최대로 어두운 시간이었기에, '예쁜 나이 스물다섯 살'이라는 노래가 슬프게 들렸다. 나에게 있어 스물다섯 살은 처량하고, 외롭고, 절박한 나이였다.


  그래도 이때의 일들이 다 인생의 중요한 거름이 되어 주었다. 이 시간을 겪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도 방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라는 속담에 완전하게 동의하진 않지만, 아직까지 구전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진로 고민은 최대한 어렸을 때 시작하고, 직접 부딪혀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 나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면 차선을 바꾸거나 유턴을 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어쨌거나 내 길을 가는 것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여러 갈래의 길을 가보면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라는 아이브의 노래 가사를 삶의 곳곳에 접목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인생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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