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시작한 한 걸음
‘그러지 말 걸, 그러지 말 걸... 여지없이 본대로 자라는 것을. 귀한 자식에게 귀한 것만 보여줄 걸 그랬다. 내 거울 같은 자식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얼마 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인생 드라마로 등극한 '폭삭 속았수다'의 내레이션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우고, 그대로 익히며 자란다.
얼마 전 동네에 작은 수영장이 생겼다. 그곳에서 첫째가 수영 강습을 시작했다. 수영장을 오가다 보니 나도 다시 수영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늘 조심스럽다. 아이 둘을 키우는 집안의 형편은 늘 빠듯하고, 여유가 생기더라도 그 돈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 “너희가 예쁜 옷 입고, 좋은 책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면 그게 내 행복이지.”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건네며 위안을 삼았다.
엄마들끼리 만나면 누구 아이가 어디에 다니는지, 무엇을 배우는지 이야기꽃이 핀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엔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넘쳐난다. 해 준 건 기억나지 않고, 못해 준 것들만 자꾸 마음에 남는다. 엄마 마음이란 다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와중에 수영 강습비를 알아봤다. 1:2 개인 레슨이라 그런지, 한 달에 20만 원. 공공체육시설 단체 강습은 10만 원도 안 하는데, 하필 시민회관 수영장은 7월까지 점검 중이다. “너무 비싸다.” 단번에 마음을 접었다.
사실 돈 말고도 핑곗거리는 더 있었다. 출산 후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수영복, 늘어진 뱃살… 몸매에 대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수영 강습 시작일이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다. 딸아이에게도 내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봤다.
“엄마도 수영 배울까?” “엄마, 수영 진짜 재밌어! 엄마도 진짜 재밌을 거야!”
아이의 반짝이는 대답에 마음 한구석이 환해졌다.
남편에게도 여러 번 마음을 털어놓았다. 처음엔 “수영복 입을 수 있어?”라는 농담이 돌아왔고, 두 번째엔 “헬스도 하고 에어로빅도 하고, 수영까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세 번째엔 그나마 “듣고 싶으면 들어야지. 복직하면 이런 거 배울 시간도 없잖아.” 그 말이 나를 움직였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결국 나는 수영 강습이 시작되는 날, 두 손을 덜덜거리며 카운터에 카드를 건넸다. ‘다음달에 내 생일이니까 나를 위한 선물 미리 하는거야’라며 나 자신에게 중얼거리며 수영장에 발을 디뎠다.
오랜만에 물 위에 둥둥 뜨는 내 몸. 손으로 물살을 가르고, 발로 물을 차며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몸에 대한 걱정은 물살에 흘러가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쁨만이 남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선생님이 알려준 동작과 연습할 것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정리했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었지만, 내 발걸음은 마냥 가벼웠다.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쳐야만 좋은 엄마가 아니라, 이렇게 나를 가르치고 배우는 엄마도 좋은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이를 하원시키러 가기 전 거울 앞에선 내 얼굴을 보다가 문득, 얼마 전 보았던 아동 심리 전문가의 영상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는 당연히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위는 의외였다. ‘부모님이 행복한 얼굴로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다.’
그 얘길 듣고 가슴이 찡해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니 그 영상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딸들이 내 행복한 얼굴을 보며 자랐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아이들만 돌보는 게 아니라, 나 자신도 아껴야겠지? 내 행복을 찾는 법도, 아이처럼 꾸준히 배워가야겠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딸아이가 내게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내 꿈은 엄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