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에서 온 쪽지
정민에게서 카톡이 왔다.
[정민]
지환 씨, 이거… 우리 맞죠? ㅋㅋ
링크를 누르니 SNS에 떠도는 짧은 영상 하나가 재생됐다.
흔들리는 화면. 야외 테라스, 허술한 간판, 그 아래에 앉은 흰 셔츠 여자의 옆얼굴.
누가 봐도 정민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예쁜 여자 손님을 슬쩍 찍으려다가 운 좋게(?) 사고 현장을 건진 모양이었다.
영상 속에는 내가 정민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함께 자리를 옮기고, 그리고..
끼~익
콰앙!!
간판이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까지 전부 들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순간이 마치 바통을 이어받듯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었다.
캡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간판 떨어지기 30초 전, 미녀를 기묘하게 구하는 남자>
홍대 간판 사건은 SNS에서 높은 조회 수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정민을 구한 바로 그 순간을 누군가 촬영한 것이다.
댓글이 주르륵 달려 있었다.
– 와 타이밍 미쳤다
– 남자분 촉 뭐냐 진짜
– 여자분 천운이네
– 마지막 소리 소름;;
– 홍대 간판남 떡상 가나요 ㅋㅋㅋ
“간판남은 또 뭐야..”
어디선가 계속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등골이 살짝 서늘해졌다.
[나]
헐 ㅋㅋ 이거 진짜 우리네
몰카 찍은 사람 누구냐 진짜..
[정민]
그래도 덕분에 안 다쳤으니까요 ㅎㅎ
홍대 간판남, 좀 멋있던데요?
[나]
간판남이라니.. ㅋㅋ
이따 저녁에 봐요~ ^^
뭐, 누가 찍었든 무슨 상관이랴.
능력을 써서 구한 인연 덕분에 지금 내 삶은 완전히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습관처럼 내일 신문을 펼쳤다.
사회면 중간쯤, 굵은 제목 하나가 눈에 박혔다.
<○○터널 연쇄 추돌, 일가족 3명 사망>
목이 바짝 말랐다.
‘어제 오후 6시 40분경, ○○터널 내 2차로에서 정체 구간을 대형 화물차가 들이받으며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일가족 3명이 사망하고..’
○○터널. 6시 40분.
마침 그 시간대, 정민과 근처에서 보기로 약속을 잡아둔 상태였다.
‘그냥.. 모른 척할까?’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까지 나는 신문이 알려주는 미래를 그냥 ‘이용’만 했다. 피해가고, 돌아가고, 챙겨 먹는 정도.
하지만 이번엔 사망자가 3명이 나오는 사고였다. 그것도 일가족.
그리고 나는 발생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간판 사건이 떠올랐다. 정민의 얼굴도 떠올랐다. 이건, 그냥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음 날.
나는 약속 시간보다 한참 이른 오후 6시 전에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터널 앞으로 이어지는 도로 옆에는 공사 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주황색 라바콘, 접이식 안전 펜스, [공사 중]이라고 쓰인 노란 표지판.
나는 잠깐 주변을 둘러봤다.
‘..이거, 진짜로 해도 되나?’
머릿속에서는 교통법규와 상식이 붉은 경고를 울렸지만,
신문에 찍힌 “일가족 3명 사망”이라는 글자가 그 모든 경고를 덮어버렸다.
“죄송합니다. 오늘만 좀..”
나는 라바콘 두 개와 접이식 펜스를 끌어다가 터널 진입 직전 2차로를 가로질러 세웠다.
마치 실제 공사 구간처럼 보이도록 표지판까지 함께 세워두고 안쪽 차선으로 유도 화살표를 만들어 뒀다.
거기다 차도 없는 주제에, 차가 고장 난 사람처럼 갓길에 서서 양손을 흔들었다.
“여기 막혔어요! 안쪽 차선으로 가세요!”
욕설 섞인 경적 소리가 울렸다.
“거 뭐야, 또 공사야?”
“아, 이 시간에 여길 막으면 어떡해!”
몇몇 운전자는 욕을 하며 나를 노려봤다.
그래도 좋았다. 속도가 줄고 있었기 때문이다.
6시 35분.
터널 안으로 진입하는 차들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6시 38분.
갑자기 터널 안쪽에서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이어서 “쾅!” 하는 소리가 났지만.
대형 사고라고 생각될 만큼 크진 않았다.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터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조금 들어가자 뒤 범퍼가 찌그러진 승용차 한 대가 보였다.
뒤차 대형 트럭 운전자가 내려서 머리를 감싸 쥐고 항의하고 있었다.
“아, 갑자기 서면 어떡합니까!”
“앞에 차가 브레이크 밟았잖아요!”
분명 사고는 사고였다.
하지만 신문에서 봤던 <연쇄 추돌, 일가족 3명 사망>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지금쯤 저 안에서 화물차가 고속으로 들이박았겠지.’
내가 라바콘과 펜스를 세워둔 덕분에 차량들이 미리 속도를 줄였고, 결국 인명 사고는 막힌 셈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라바콘과 펜스를 다시 원래 자리로 치웠다.
멀리서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엉겁결에 몸을 살짝 돌려 사람들 틈에 섞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한 행동이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전히 옳다고 말할 자신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내일 신문이 알려준 <3명 사망> 짜리 사고는 분명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만은 확실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내일 신문 사회면을 펼쳤다.
<○○터널 입구 차량 접촉사고, 퇴근길 정체 빚어>
제목부터 달라져 있었다.
일가족 3명 사망, 연쇄 추돌. 그런 단어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지난 ㅇ어제 오후 6시 40분쯤, ○○터널 입구 ㄱ갓길 부근에서 대형트럭과 승용차가 부딪히는 ㄱㄱ경미한 사고가 발생했다.’
‘인근에는 공사 표지판과 ㅈ장애물이 일시적으로 도로 일부를 가로막고 있어 운전자들이 급하게 방향을 ㅇ전환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밝혔다.’
“…”
나는 기사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ㅇ어제”, “ㄱ갓길”, “ㄱㄱ경미한”, “ㅈ장애물”, “ㅇ전환”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오타. 몇 줄은 글자체도 달랐다.
어떤 문장은 폰트가 조금 다르고, 또 자간이 아주 조금 더 넓은 것도 있었다.
위아래 다른 기사들은 멀쩡했다.
폰트도, 잉크도, 줄 간격도 딱 떨어지게 맞아떨어져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무언가 번뜩 머리를 스쳤다.
나는 부랴부랴 정민을 구했던 홍대 간판 기사를 찾았다.
<어제 오후 333시 40분경, 홍ㄷ대 ○○카페 외벽 ㄲㄱ간판 추락〉
“역시..”
글자가 이상한 기사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내가 개입한 사건이라는 것.
홍대 간판 기사,
○○터널 기사.
둘 다 내가 ‘예정된 미래’에 손을 댄 사건들이었다.
그리고 둘 다 오타와 글자 뒤틀림, 폰트 깨짐이 눈에 띄게 많았다.
마치 누군가 이미 인쇄된 지면 위에 나중에 억지로 내용을 덧입히다가 신문이 ‘깨져버린’ 것처럼.
나는 다른 예전 신문들을 다시 꺼내 펼쳐봤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날의 신문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내가 움직이면.. 신문이 나중에 고쳐진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 방 안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그리고 다음 날.
신문이 평소보다 2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사각.’
익숙한 소리가 난 순간 나는 문을 번쩍 열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닥에는 신문 한 부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눈에 띄는 작은 쪽지 한 장이 접혀 있었다.
쪽지를 펼쳤다.
[신문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편집부 드림]
글씨는 단정했다.
볼펜으로 또박또박 쓴, 어딘가 교과서적인 필체.
“편집부..?”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신문 제호를 바라봤다.
[내일 신문]
그 바로 아래,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희미한 회색 글씨가 찍혀 있었다.
[수령자 : 05]
"수령자 05?”
"이게 원래 있었나?.."
어쨌거나.. 이 신문을 받아보는 이가 나 말고도 적어도 네 명은 더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쪽지를 들여다봤다.
[신문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편집부 드림]
신문이 늦었다는 말은, 곧 원래 예정된 시간에 나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왜 늦었을까..”
나는 답을 알 것 같았다.
어제도 나는 또 한 번 미래에 개입했다.
그리고 아마, 나 말고도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또 다른 미래에 손을 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수정본을 받아 다시 인쇄하느라 편집부는 아침부터 분주했겠지.
신문 위 네 글자. [내일 신문]
오늘따라 그 제목이 이상하게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저 멀리, 보이지 않는 편집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