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자의 규칙

이건 내가 만든 오타가 아니야!

by 채PD

1.

반지하 방 한쪽 벽면에는 그동안 배달되어 온 [내일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다.
로또 당첨 날부터 오늘까지, 얼추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의 기록들.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채 대충 쌓아만 둔 종이더미들.

오늘 아침, 나는 처음으로 그 종이들을 “인생 치트키”가 아니라 실험 데이터로 보기로 했다.


“자, 한 번 까보자. 룰북.”


내가 미래의 사건에 개입하면 활자가 뒤틀린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하지만 규칙이 그것만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딘가 더 세밀한 룰이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첫날 신문부터 차례대로 전부 정독해 보기로 했다.
책상 위에 신문을 날짜별로 펼쳐 놓고,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읽기 시작한 신문은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야 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끝내, 몇 가지 규칙을 뽑아낼 수 있었다.

- (내가 찾아낸) 내일 신문 규칙

1. 신문은 ‘내일 일어날 사건들’의 기록이다. 이건 거의 확실.

2. 구독자가 사건에 개입하면, 그 기사의 활자가 뒤틀린다. (오타, 공백, 폰트 깨짐 등등)

3. 사건에 개입한 정도가 클수록, 기사의 뒤틀림도 커진다.

홍대 간판 사건에서 정민을 구했을 때보다, 터널에서 예정된 사망자들을 막아냈을 때 기사의 오류가 훨씬 심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규칙이라고 부르긴 애매하지만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발견했다.


‘내가 개입한 사건 말고도 신문 곳곳에 오타들이 숨어 있다.’는 것.


2.

내가 손대지 않았는데도 오타가 발견된다는 건, 나 말고도 또 다른 수령자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리고 그 기사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 SI그룹 관련 기사들이 유독 많았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SI 이천 공장 화재, ㄷ대형 참사 우려 속 “신속ㅎ 진압”으로 마무리>

‘야간 누전으로 인한 불길을 마침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침착하게 해결ㄹ…’

<SI 오션, ㄷ대규모 ㅍ플랜트 수주 ㅆ성공>

<SI 금융, 올해도 압도ㄷ적인 투자 수.익률 기기록 중>


활자가 군데군데 깨져 있고, 단어가 이상하게 늘어나거나 잘려 있다.

SI그룹은 불과 2년 만에 재계 18위에서 4위까지 급성장 중인 기업이다.


“우연치곤 참, 눈에 많이 띄네..”

두 번째는 정치권 기사들이었다.

<야당 대변인, 국민 여여여론 조사 결과 정확히 예측해 화제>

<야당 소장파 의원들, 당내 지도부의 ㅊ청렴도 지ㅈ적하며 당내 ㅇ위기론 주장, 마침 원내대표의 뇌물 수수 ㅎㄹ녹취록 공개돼 파장>


내용만 놓고 보면 누군가 여론조사 결과를 미리 알고 움직였거나, 폭로 타이밍을 교묘하게 계산한 것처럼 보이는 기사들이다.

종종 사회면에서도 오타나 활자 깨짐이 있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정치와 경제 영역이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나 말고도 누군가 신문을 받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나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판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이유는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그렇게 느끼는 쪽이 왠지 훨씬 자연스러웠다.


3.

[정민]
이 뉴스 봤어?
청년 설문조사 보는데, 괜히 오빠는 딴 세상 사람 같아서.

정민이 보낸 링크를 눌렀다.

– “20‧30대 절반 이상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 “응답자의 72%, ‘내일에 희망이 없다’고 답해 이른바 ‘불안 세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지친 얼굴의 내 또래들이 인터뷰 화면 속으로 지나갔다.

“취업 준비만 4년째인데.. 뭐, 내일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잘 안 들죠.”

“내일을 생각하면 그냥 막막하죠..”


정민과 나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정민에게 나는 취업 준비생이라고 말했다.
대신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어서 크게 조급하진 않다”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실제로 돈은 충분히 있었다. 로또 당첨금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고, 무엇보다 다음 날 주가를 정확히 알고 있으니 날마다 돈이 ‘복사’되는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BMW 한 대 뽑은 것 말고는 이렇다 할 큰 지출도 없었다.

사실 살면서 이런 금액을 가져본 적이 없다 보니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쨌든.

고급 외제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고, 데이트 때도 돈 걱정 없이 쓰다 보니 정민은 가끔 이렇게 묻곤 한다.

“오빠, 취업 준비.. 진짜 하는 거 맞죠? 한량 중의 한량 같아서.”


나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봤다.

반지하. 공시 5년 차. 코인으로 전 재산의 80% 증발.

과거의 나다. 불과 2개월 전.


“원래라면, 이 설문조사 안에 나도 있었겠지.”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틀에서 살짝 비켜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 하나.

내일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


4.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신문은 왜 하필 나에게 도착한 걸까? 나는 선택받은 걸까? 아니면 그냥 우연히 걸려든 걸까?'

'나 말고 다른 이들도 분명 이 신문을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질문.

'도대체 이 신문은 누가 보내는 걸까?'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허무맹랑한 상상들이 줄줄이 떠올랐지만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5.

다음 날 아침.

이제 나는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는 게 일과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눈에 딱 걸리는 모임 공지를 하나 발견했다.


<투모로우 페이퍼 포럼 제7차 조찬 모임 안내>
– 주제: “내일의 시장을 읽는 법”
– 대상: 초대받은 사람에 한함
– 문의: electa@naver.com


“뭐야, 이 암호 같은 공지는.. 간첩들 연락망이야?”


농담처럼 중얼거리다가, 문득 한 단어에 시선이 멈췄다.

투모로우 페이퍼. Tomorrow Paper.

내가 매일 아침 쌓아두는 그 종이 더미. [내일 신문].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


뒤늦게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몸이 반응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신문을 다시 움켜쥐었다.


“수령자들! 신문을 같이 보는 애들끼리,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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