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웅 Jun 12. 2019

[독후감] 병원의 사생활

  몸이 본능처럼 움직이면, 영혼은 몸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채 몸에 겨우 달라붙어 따라다녔다.  수술방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고 나오면, 전등 스위치를 켰다 끈 것처럼 창밖은 어두워 있었다.  병동을 둘러보고 오더를 내고 남은 일들을 처리한 후 전화기 쪽에 머리를 두고 서둘러 잠을 청했다.  그런 나날의 연속을 견뎌낼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했다.  나는 그림을 그렸다.


  외과 레지던트를 하기 전 나는 인턴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그 시간 동안 찍어 둔 사진을 인화해서, 같은 기본 사이즈 크기의 드로잉북에 연필로 그대로 그려나갔다.  주말 동안 응급대기를 하며 밀린 차트들을 정리하다가 머리가 무거워지면, 나는 드로잉북과 연필을 꺼내 사진 속 풍경들을 그대로 그렸다.  3년 반의 막막하고 무거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소소한 딴짓들 중 하나는, 그림이었다.  그렇게 그린 그림들을 모아 드로잉북 한 권을 남겼다.  지금은 선이 번지지 않게 접착 아스테이지를 붙여 추억으로 보관하고 있다.  


  그때, 이 책을 쓴 신경외과 선생님처럼 글도 같이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나는 레지던트를 마칠 즈음부터 낙서하듯 글을 시작했다.  지금은 나의 일상의 딴짓 중 하나가 글을 쓰는 일이지만, 레지던트 당시의 나는 글 대신 그림이 일상의 딴짓이었던 셈이다.  


  직업적 일상을 이어나가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딴짓을 했던 이유는, 내가 가진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몸과 영혼이 따로 분리될 것 같은 정신없는 일상에 매몰되다 자칫 내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것을 잃어버릴까 다잡는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틈틈이 몸부림을 쳐서 지금은 걱정하던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느냐 물으면, 분명하게 대답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글로 나를 끊임없이 두르며 잘 모르겠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 사소한 몸부림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의사도 나와 비슷한 몸부림을 겪고 있구나 생각하며, 반가웠고 공감했다.  


  신경외과라는, 정신과 체력의 극한을 시험당하는 과의 영역에서 이런 글과 그림을 만들어냈다는 데에 경의를 표한다.  그만큼, 이 의사는 어쩌면 절박했을지 모른다.  단순히 수련을 마쳐야 한다는 절박함이 아니라, 수련의 극한 안에서도 자신이 놓지 말아야 할, 의사와 인간으로서의 어떤 기본과 감정 같은 것들에 대한 절박함 말이다.  정신과 의사에의 꿈만큼 글은 따뜻하고, 신경외과 의사로 수련하면서 서전의 길만큼 그림은 정교하다.  따뜻하고 정교함은 나직하고 담담한데, 그 아래에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어쩌면 이 책을 읽은 내 마음의 전이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수련이라는 혹독한 환경 안에서도 이 의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잃지 않고 잘 간직해내었다는 점이다.  


  지금쯤 수련을 마치고 신경외과 전문의가 되었을 그는, 마음이 따뜻하고 탄탄한 기본으로 무장한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 어딘가에서 집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앞날에 견고하고 넓은 가슴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수련 때와는 다른 현실의 수많은 파도 앞에서 그의 마음이 온기를 잃지 않고 유연하길 바란다.  극한의 시간 속에서 그려온 그림 속 선들이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따뜻하지만 견뎌내야 했던 문장들이 깊은 사유를 겸비하고 누군가를 안아주기를 바란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미 그럴 수 있을 능력을 그는 자신의 책에서 보여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후감] 내게 무해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