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는 결실이 따라야 한다. 결실 없는 노동은 노예의 삶이다. 텃밭을 가꾸면서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면, 나는 진즉에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결실은 있었다. 그러나, 공들인 노력에 어울리는 결실을 얻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다. 그렇지만, 결실 자체만으로 보면 부족하지 않고, 결실에 비해 더 들어간 노력은 자기만족이라는 나름의 위안으로 채우고 있다. 나의 텃밭은 실질적인 결과보다는 자기만족 가득한 계산에 의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텃밭의 결실이란 주로 먹거리를 의미한다. 텃밭에서 바로 수확한 먹거리는 노력에 비해 양이 적긴 해도, 한 가족이 소비하기엔 양이 무척 많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갓 거둔 것의 넘치는 생기이다. 생기는 같은 맛이라 해도 풍미와 깊이를 진득하게 품고 있다. 나는 텃밭의 생기를 좋아해서, 거두면 바로 먹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지고 있고, 거두어 냉장고에 넣고 보관하는 일을 일종의 통념처럼 거부한다. 이런 습관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
올해 전반기의 텃밭의 결실을 먹거리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사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게을렀으며, 결실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작물의 종류가 많지 않다 보니 한 작물당 수확하는 양이 너무 많아서, 다양한 작물을 적당한 양으로 심어보자고 했지만, 다양함은 생각보다 쉽게 발현되지 않았다. 입도 대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작물들도 많았다.
불어오는 북풍에 쨍한 햇볕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2월이면, 그늘지고 축축한 텃밭으로 들어가 겨우내 잘 버티고 자란 쪽파들을 거두었다. 겨울을 버틴 쪽파들은 향이 짙고 물이 바짝 올라 있지만, 제대로 자라지는 않아서 조금 작고 가늘었다. 나는 그것을 양지바른 마당에 앉아서 일일이 다듬었다. 열심히 다듬은 쪽파를 아내에게 주고 출근했다 돌아오니, 그것들은 맛깔스러운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한동안 나는 향이 알싸하게 올라오는 파김치에 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었다.
음력 3월이 시작되면, 미리 땅을 준비해 둔 텃밭에 고추 가지 토마토 깻잎 등을 심었다. 그러고 한 달이 조금 넘어가면 가장 먼저 수확하게 되는 것이 고추다. 그쯤 되면 먹을 만한 깻잎도 몇 장 딸 수 있고, 구석에 나란히 심은 상추도 아쉽지 않아진다. 이제부터는 일부러 고추를 사서 먹을 일이 없어진다. 먹는 속도보다도, 맺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서, 고추는 열심히 먹고 나눠주고 하다가, 가을이 되어 수확의 막바지가 되면 아직 빨갛게 익기 전의 초록 고추를 거두어 얇게 썰은 다음 봉투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 둔다. 넉넉하게 두 봉을 담아 둔 썬 고추는 겨우내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온갖 요리에 들어가 아쉽지 않은 맛을 내었다.
가지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하면 나는 꼭 두 가지 요리를 해 본다. 하나는 가지 그라탕이고 하나는 전채요리 개념의 샐러드이다. 가지 맛을 알기 시작하면 나이 든 것이라고 해서 조금은 서글프지만, 갓 딴 가지로 한 요리는 어쩔 수 없이 맛있었다. 가지를 길게 썰어 팬에 살짝 익혀 부드럽게 한 후에 오븐 팬 바닥에 두른다. 얇게 저민 감자를 버터에 익히고 토마토소스를 차례로 얹은 다음 피자치즈를 올려 오븐에서 익힌다. 가지 그라탕의 완성이다.
먹기 좋을 정도로 자란 호박 하나와, 가지 두어 개, 그리고 이제 슬슬 꽃대를 보이려고 하는 바질 잎 네댓 장이 필요하다. 이는 모두 텃밭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선 가지와 호박은 얇게 썰어서 기름 없는 팬에 살짝 그을릴 정도로 굽는다. 보울에 담은 뒤, 바질을 얇게 저미듯 썰어 섞는다. 여기에 올리브 오일, 발사믹 식초, 소금, 후추로 간을 해서 잘 섞어 접시에 담는다. 여기에 길고 얇게 썬 고추도 넣을 수 있다. 이 요리는 모든 재료가 내가 직접 기른 것들로 만들 수 있다는 점과, 맛본 사람들이 대부분 만족스러워해서 가장 자신 있어하는 요리이다. 자신감의 많은 부분은, 갓 거두어 생기가 넘치는 재료들에 있다.
바다에 나가서 농어를 잡아 오면, 숙성을 거쳐 회로 먹고 남은 필레들이 생긴다. 주저할 필요가 없다. 마당에 지천인 로즈마리와 타임을 가위로 잘라서 물에 한 번 씻은 다음, 올리브 오일, 레몬 껍질, 레몬즙, 소금, 후추와 함께 섞어 마리네이드 한다. 하루 정도 마리네이드 한 다음, 그대로 팬에 겉을 굽다가 오븐에 넣어 완전히 익히면 농어 스테이크가 된다. 조개류와 화이트 와인을 사서 오븐팬에 넣고 익히면 카르토쵸가 된다. 레몬도 종종 집에서 익은 녀석들이 있어서, 농장에서 키운 레몬보다는 덜 달고 씁쓸한 맛이 나긴 하지만 요리 재료로는 손색이 없다. 그런 레몬이 있을 때, 적절한 요리를 만나면 만족은 더 커진다.
텃밭의 결실들 중에 조금 난처한 것은 늙은 호박이나 단호박 종류들이다. 수확할 때엔 감탄과 든든함을 담아 손에 들지만, 그러고 나면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이 시작된다. 보관도 가능하니 일단 두어보자 하고는 기억에서 멀어진 채 썩어간다. 그렇게 잃은 늙은 호박이 여럿이다. 올해는 좀 더 고민했다. 거둔 늙은 호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두 가지를 했다. 우선, 돼지 목살을 구입한 뒤 온갖 야채와 함께 약간 되직하고 달달하게 두루치기를 만들었다. 그것을 뚜껑을 자르고 속을 판 늙은 호박 안에 가득 채우고, 위를 피자치즈로 덮었다. 오븐에서 한 시간 정도 호박이 익을 정도로만 익혀 손님 접대용으로 내었다. 맛이야 두루치기에 잘 익은 호박맛이지만 모양새로는 이만한 요리도 없을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냉동실에 언 채로 보관된 밤과 대추를 꺼냈다. 적당한 크기의 배를 하나 사서 깍둑썰기를 한 뒤, 속을 비운 호박 안에 몰아넣었다. 팔각과 계피도 넣어 준 뒤, 꿀을 넉넉히 넣고 뚜껑을 닫아 오븐에서 익혔다. 몸보신에 그만일 듯한 냄새 가득, 후식요리로 제격이었다.
상추나 깻잎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깻잎은 조금 넓어진다 싶으면 바이러스 병에 걸려 동그랗게 말렸다. 상추는 잎이 커질까 싶은 순간 꽃대를 불쑥 내 버리고 쇠어버렸다. 옥수수는 형태만 만들다 말라버렸다. 올해 토마토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고수는 달랐다. 고수는 굳이 잘 돌보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곳곳에서 잎을 내었다. 월동도 가능해서, 고기를 굽거나 할 때 텃밭을 잘 둘러보면 먹을만한 고수들을 한겨울에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고수가 꽃을 피우고 동그랗게 씨를 맺으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두어서 텃밭 아무 데나 뿌렸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조금 추워지면 고수는 낮은 키로 넉넉하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있을 것이다.
가을의 중턱에 들어섰다. 가을이야말로 수확의 계절이다. 생강과 고구마와 콩이 기다리고 있고, 가지와 고추는 이제 마지막 결실에 집중하고 있다. 가을 텃밭의 시작은 태풍과 폭우에 버거웠다. 결실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텃밭에 담지만, 돌아보면 지난 노력으로 즐긴 결실들이 있어 보람을 느낀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그런 재미와 결실이 나를 텃밭에서 몸을 숙이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