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텃밭일기 18화

텃밭일기 #18, 20191013

by 전영웅

날이 무척 청명해서 가을이구나 감탄이 절로 나오는 날들이었다. 쏟아지는 정오의 햇볕을 보고 있자니, 출근보다는 그늘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 마당의 화사함을 종일 즐기고 싶었다. 쏟아지는 볕에 백구인 반려견의 몸을 감싼 털이 눈부셨다. 마당의 잔디 이파리 하나하나 마른 듯 빛을 발했다. 눈부신 햇살은 그냥 마주하기엔 부담스러워서, 챙이 넓은 모자 하나 있어야 했고 주저앉아 호미질을 하다 보면 땀이 흘렀다.


텃밭의 잡초들을 거두고 난 후엔, 마당과 집 주변의 잡초들을 거두어야 했다. 마당 돌담 아래 타임이 퍼진 자리 옆으로는 잔디를 잠식하는 잡초들이 퍼지고 있었다. 집 옆의 뒤뜰로 이어지는 통로 역시 잡초들이 가을볕에 꽃을 피우고 여물고 있었다. 바질과 루꼴라 씨앗을 뿌려둔 뒤뜰에는 바질과 루꼴라가 덤불이 되어버린 잡초들 사이에서 힘겹고 파리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하루에 조금씩, 호미질을 해서 모두 거두었다. 가늘게 줄기를 뻗은 바질과 루꼴라는 다치지 않게 잘 다루면서 주변의 잡초를 캐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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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입구부터 텃밭, 마당과 뒤뜰까지, 가을 작업으로 시작한 잡초 거두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렇게 올해의 잡초관리는 대략 마무리했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잡초가 사계절 내내 자란다. 빠르게 또는 더디게 자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날이 추워지고 잡초들이 더디게 자라는 지금부터의 시간이 그나마 잡초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시간이다. 아니, 그냥 신경을 끈다. 아무리 열심히 잡초를 거두어도, 뿌리가 남고 흙 속에 섞인 씨앗들은 보란 듯이 철마다 싹을 내고 작물들을 뒤덮어버릴 것이다. 추운 겨우내 줄기를 뻗고 부풀려 살아남아도, 모른 척 두었다가 봄이 시작되면 거두는 것이 정신건강과 체력관리에 유리하다.


매번 신경전을 벌이고 손을 쉴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잡초이긴 하지만, 그냥 퍼지도록 두는 잡초도 있다. 허브들이다. 천성이 잡초인 허브들은 먹을 수 있거나 향을 품고 있어서 인간에게 관리받으며 생존한다. 우리 집에도 주차장 주변으로 허브들이 지천이다. 집 입구와 돌담 아래로는 타임과 라벤더가 줄지어 퍼지고 있고, 북쪽을 바라보는 집 경계에는 펜넬과 딜이 제 맘대로 씨앗을 퍼뜨려 군락을 이루었다. 주차장 옆의 작은 공터는 흙을 북돋고 돌로 경계를 지어 작은 허브동산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로즈마리, 펜넬, 타라곤, 체리세이지, 민트, 타임이 알아서 자라고 있다. 반려견이 줄을 타고 돌아다니는 남쪽 경계로는 세 종류의 민트와 레몬밤이 군락을 이룬다. 그리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경계로는 로즈마리가 담을 형성한다. 티트리 나무는 현관문 앞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오르다 바람을 맞고 휘청거린다. 그리고, 뒤뜰에는 한여름 알아서 자라라고 무심히 파종한 바질과 루꼴라를 방금 잡초 덤불 속에서 구해냈다. 녀석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정도의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는 초록의 이파리를 유지하며 그대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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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태풍에 이어 네 번째 태풍 하기비스의 간접 영향으로 바람이 좀 불었다. 현관 앞의 감나무에서는 바람에 휘청일 때마다 감이 바닥에 떨어져 터지곤 한다. 토종감이라 먹기보다는 바라보는 재미가 있는데, 잔디와 시멘트 바닥에 벌레 먹고 터진 감들과 함께 보는 광경은 별로 재밌지 않다. 나무에 매달린 감은 주홍으로 물들었고, 나는 바닥의 터진 감들을 반려견의 변과 함께 날마다 치우느라 바쁘다. 매달린 감들이 좀 더 익으면 한꺼번에 따서 먹거나 말릴 생각이다.


텃밭은 사라진 기대와 여무는 기대가 교차하는 중이다. 배추는 더 이상 크지를 않고 무는 간신히 뿌리를 내리며 성장 중이다. 콩은 바람에 타버려서 여물지도 못하고 깡말라 죽었다. 가지 역시 그렇다. 고추는 서늘해진 가을볕에 안간힘을 다해 마지막 꽃을 피우고 있다. 생강과 우도땅콩은 적당히 자라 이제 곧 수확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 뒤를 이어 고구마도 캐야 한다. 가을의 끝에 거둘 것들을 거두고 정리할 것들을 정리하고 나면, 빈 땅이 많아질 것이다. 올해는 땅을 쉬게 할 겸 넓은 빈터를 그대로 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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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변의 밭으로는 브로콜리 모종들을 심고 물을 주고 있었다. 스프링클러가 칙칙 소리를 내며 멀리 둥글게 물을 뿌리고 있었다. 청명하고 화창한 가을볕에 감탄만 하다 보니 그만큼 텃밭이 가물고 있었음을 잊고 있었다. 주말의 화창한 볕 아래 반려견을 오랜 시간 산책시키고 돌아오자마자 텃밭에 넉넉하게 물을 뿌렸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노을 없이 저무는 해에 시야가 금방 어둑해졌다. 산과 바다를 누비며 간만의 긴 산책을 즐긴 반려견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지, 나를 보자마자 밥 달라고 다가오는 길고양이 가족들 모습에 낑낑대며 약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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