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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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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Oct 18. 2020

텃밭일기 #51, 20201018

  무엇을 해도 좋을 가을날이 지나고 있다.  하늘은 높고 깊고 청명해져서, 가을 바닷가에 나가 바람에 실처럼 흐드러지는 구름을 감상한다.  새로 장만한 자전거를 타고 바리메 오름 임도를 달리면 상쾌한 산 공기 안에서 이제 곧 임박한 활엽수들의 창연한 변화를 감지한다.  늦은 밤 검도장에 들어서 도복을 입고 호구를 쓰면, 지금이 온도나 습도에 지치지 않고 운동하기 아주 좋은 시기구나 대번에 느낀다.  해가 저물어 쌀쌀한 공기에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면, 마당에서 장만한 장작 쪼가리들을 모아 간이화로에 넣고 불을 붙인다.  즐김에 있어 군더더기가 없고, 어떤 것을 해도 고민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그런 좋은 날들에, 텃밭은 내내 방치해두고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심은 것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잡초도 덩달아 자라던 텃밭 공간은 이제 맨흙이 드러날 정도로 듬성해졌다.  호박 줄기는 빛바랜 이파리를 간신히 넓히고 막바지 가을 호박을 열심히 맺었다.  그 사이사이 노랗게 핀 호박꽃은, 사그라드는 목숨줄을 붙잡고 기어이 살아나려는 듯 몸부림의 한 장면이었다.  고구마도 마찬가지였다.  작년까지 심은 고구마는 11월 말에도 이파리가 무성했는데, 올해 심은 고구마는 품종이 달라서인지 이파리와 줄기가 벌써부터 듬성해지고 말라갔다.  그 사이로 고구마꽃이 몇 송이 피었다.  서늘한 아침 공기에 색이 좀 다른 나팔꽃 같은 고구마꽃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처절한 의지 같아서, ‘이제 고구마를 캐야겠구나’하는 인간의 의지가 측은함으로 힘을 잃는다. 

  대략 실패로 끝난 서리태 콩 중 텃밭에서 어떻게든 버텨낸 몇 그루는 거친 황토색으로 바랬다.  그 옆 일본가지는 여전히 자줏빛으로 생생하다.  바질은 열심히 꽃대를 세우더니 무관심한 사이에 갈색으로 메마르며 그 안에서 씨를 익히고 있었다.  서늘한 공기에 아기자기하면서도 가장 분주한 녀석들은 고추다.  이미 줄기는 짙었던 초록에서 빛바래가고 있었다.  이제껏 열심히 맺은 고추가 무관심한 사이 빨갛게 익어갔고, 그 위로 하얗고 작게 꽃들을 열심히 피워내고 있었다.  그 마저도 고추로 만들어 종족번식에의 본능으로 생의 마무리까지 게으르지 않겠다는 의지 같았다.  고추들이 너무 많이 빨갛게 익어 중간에 한 번 따주었는데도 며칠 만에 다시 그런 모습이었다.  


  너무 메마른 가을날이 이어졌다.  무엇을 해도 좋을 나날들 사이에 유일하게 파고든 걱정이었다.  가을 파종을 하고 모종을 심은 밭들은 이삼일에 한 번씩 자리를 바꾸어가며 스프링클러를 돌렸다.  가을볕은 쨍쨍해도 그 볕에 작물들이 메마를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텃밭을 돌보는 입장에서 거칠게 말라가는 흙에 무심해지기는 어렵다.  호스를 들고 물을 충분히 뿌려주었다.  작물들이 다치지 않을 정도의 수압으로 여기저기 조준해서 열심히 물을 뿌리는데, 작은 스프링클러 하나 설치하면 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수시로 물을 열심히 주어야 했던 봄 여름을 지나 가을의 중턱에서 들었다.  게으른 걸까, 아니면 마음의 여유에 생긴 작은 꼼수일까..  텃밭도 은근하게 비용이 드는 취미생활이다.  

  어쩔 수 없이 일 년을 살고 말아야 할 녀석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녀석들이 뒤섞여 있다.  쓸데없고 별 의미 없는 감상일 것이다.  싸늘한 밤공기에 몸을 움츠렸다가 한낮의 쨍한 가을볕에 어떻게든 이파리를 펴고 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한다.  삶의 마지막이 예정되어 있는 것들은 그렇게 처절하다.  그것들의 처절함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아니, 처절함으로 마지막까지 맺어낸 녀석의 것들을 무심히 거두어가는 인간은 자체로 잔인하고 무례하다.  굵은 줄기에 매달린 이파리들이 퍼석해지고 말라가다 떨어뜨리는 녀석들은 뿌리로 물을 한껏 머금고 한낮의 가을볕을 여유롭게 받으며 겨울을 준비한다.  내년은 어느 자리에 새순을 틔우고 어떤 모습으로 자라며 넉넉하게 즐길 것인가, 작은 기대도 엿보인다.  사그라드는 것들에 이제는 작은 서글픔이 생긴다.  반복을 준비하며 몸을 부풀리고 눈을 감는 것들에는 언제까지 내가 함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이 생긴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감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쓸데없고 의미 없어도 별 수 없다.  생물학적 삶의 내리막을 감지하는 인간은 스스로에게도 어떨 수 없이 무력하다. 

  감나무 이파리가 많이 떨어지고, 감은 특유의 색으로 익어 도드라졌다.  좀 더 익으면 까치와 직박구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가장 맛있게 익은 감부터 찾아 부리 자국을 남길 것이다.  포도도 잎이 많이 떨어졌다.  티트리는 아직 초록으로 생생해서 바람에 제멋대로 줄기를 휘어 바람 방향을 수시로 일러댄다.  집 마당 한쪽으로 씨가 언제 떨어진 것인지 억새가 자라 꽃대를 올렸다.  조만간 가을 명소로 우리 집 마당이 선정될지 모르겠다.  가을배추와 무와 쪽파는 여전히 푸르게 잘 자라는 중이다.  올해엔 벌레를 많이 타지 않아 다행이다.  귤나무의 귤이 메마른 가을 땅에서 노랗게 익는 중이다.  맛없는 품종이지만, 올해는 좀 달아지려나 싶다.  귤나무 뒤로 가려진 공간을 잘 살펴보니 잡초들이 꽃을 피우고 씨를 익혀 날리기 직전이었다.  어서 들어가 뽑아내야겠다 싶었다.  지난 태풍 바람에 타들어가며 죽어가는 마당의 로즈마리 줄기들도 어서 잘라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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