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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Apr 17. 2022

작은 트라우마 : 20220417

  우크라이나에서 보내진 소식들과 사진들은 참혹했다.  21세기의 전쟁이 아닌 느낌이었다.  2차대전 시기 어느 때의 어떤 도시의 모습같았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는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  주요시설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말이다.  정밀 타격을 하고 민간인의 피해는 최소화한다는 현대전의 개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술상 2일이면 전쟁을 끝낸다는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가 전쟁은 몇 달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전쟁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임은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면, 정밀한 타격과 신속한 전술로 주요타겟을 공격하고 신속하게 항복을 받아내어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끝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이다.  가장 힘이 센 국가가 무력을 펼치는데,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고전 중이다.  러시아의 문제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가 정말로 거세게 저항을 하는 것인지, 또는 전술의 오류거나 현대전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면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목격하는 중이다.  민간인 거주지 폭격, 민간시설 파괴, 약탈, 학살, 강간 등등.. 문명화되고 첨단으로 발전했다는 현대에 벌어진 전쟁에서 우리는 과거를 목격하는 중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일당 백은 할 것 처럼 언급되었던 최첨단 무기들이 길거리에 무더기로 나자빠지는 모습이다.  첨단을 걷는 현대의 문명이 제대로 기능하는 유일한 모습은, 그런 전술무기들의 어처구니없는 몰락과, 처참하게 부서진 도시의 풍경과, 벌어질 수 있는 모든 폭력에 노출되고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적어도 나에겐 얕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어가고 있다.  


  무심히 SNS를 보며 스크롤을 넘기다가 우연히 전쟁게임 광고를 보게 되었다.  순간 나도모르게 우크라이나의 처참한 모습들이 떠오르며 속에서 진저리가 났다.  아, 이런 것이 트라우마구나..  내가 지금 지구 저편에서 날아 온 처참한 모습들에 상처를 받고 있구나.. 깨달았다.  전쟁을 소재로 한 모든 게임들에 거부감이 들었다.  우연히 본 게임광고 속 캐릭터나 풍경들은 파스텔 톤의 귀엽고 아기자기했지만, 그런 비현실의 호기심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얼른 앱을 닫고 심호흡을 했다.  현실의 위기뿐만 아니라 내 마음도 작은 위기에 빠져 있구나 싶었다. 


  현실 공산주의란 과연 존재했을까.  이전 세기에 벌어졌던 냉전 속 실험은 그 과정이란 것이 존재했을까..  푸틴의 저 악랄함과 무모함은 소련과 공산주의의 역사와 대입하여 볼 때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많은 의문이 들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공산주의는 실체에 대한 의심과 함께, 거의 완벽하게 실패한 근대세계의 실험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실 현실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에 굴복했다.  중국은 자본과 인권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독재국가일 뿐이다.  5천년 대륙을 지배하며 쌓아 온 사상과 정치력, 그리고 근대 공산주의 시대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인간사상의 정립과 문화혁명 등의 경험은 동아시아 문화의 어떤 구심점이었다.  하지만 시진핑의 시대에 그런 것들은 한낱 휴지조각같은 쓰레기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사상은 사라지고 독재와 통제만이 남았다.  인민들은 노동의 숭고함 따위는 잊어버렸고 값싼 노동력의 주체로 통제당할 뿐이다.  인민들은 통제 안에서 저항보다는 파시즘에 물드는 길을 선택했고, 세계문명 안에서 점점 양아치가 되어가고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유럽과 아시아를 걸친 대륙 특유의 문명은 점점 느끼기 힘들다.  공산주의는 진작에 무너졌지만, 그 사상적 흐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치와 지도자의 역할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푸틴은 길거리 한복판에서 정적을 암살하거나 테러하는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권력의 정점에서 독재자가 되었다.  인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파시스트가 되길 선택했다.  인민들 스스로가 전쟁을 옹호하면서 외치는 구호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니, 경악스럽고 참담할 뿐이다.  다른 아이들을 죽여가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다는 사고는 대체 어떤 논리에서 나올 수 있을까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쨌든, 이번 전쟁을 보면서 분명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생겼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은 절대적 전제다.  전쟁을 옹호하고 전쟁을 원한다는 사람들, 내가 사는 세상 안에서 그런 주장을 외치는 자들은 그들이 먼저 총을 들고 무기를 들고 최전방으로 나가서 싸우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그게 경험없는 젊은 사람이든, 여전히 철없는 노인네들이든, 그런 인간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최전방에서 먼저 싸우길 바란다.  그래서, 전쟁이 당신들의 생각처럼 필요한 것인지, 나라를 지키는 데 벌어지는 폭력이란 얼마나 비인간 적인 것인지, 얼마나 참혹하고 처참한 풍경인지 느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전쟁은 생각조차도 안된다.  현대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좀 더 화력좋은 무기가 난무하는 처참한 재래식 전쟁이 벌어질 뿐이다.  민간인들은 여전히 가장 크게 희생당하는 존재들이다.  변함없는, 변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세계 2위의 군사대국 러시아가 지금 그 사실을 너무도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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