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관측 상, 이번 겨울에는 언제 제주에 서리가 처음으로 내렸는지 모른다. 개인의 경험으로는 바로 며칠 전 첫 서리가 내렸다. 푸른 하늘이 쨍하고 아침 공기에는 냉기가 밀도있게 배어 있었다. 흙이 드러난 텃밭에 하얀 서리가 듬성듬성 내려 있었고, 무 청이 시들었다. 출근하려고 올라 탄 차의 앞유리에는 성에가 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1월 중순에 첫 서리의 경험이라니, 여기는 제주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기후변화가 만든 지각인지 여전히 판단이 서지 않는다.
서리가 내렸다지만 아직 영하의 기온은 찾아오지 않았다. 제주에서 가장 추웠던 경험이 영하 4도 였다.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내린 눈이 녹아 얼면서 빙판이 되자, 나는 운전을 포기하고 택시를 불러 출퇴근을 했었다. 그것도 하루이틀이면 지날 추위였다. 올해는 그런 일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겨울의 반이 지나고 있는데 아직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건,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의 낡은 마음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크다. 내가 좀 더 젊은 나이였다면, 쌓이지 않는 눈을 아쉬워했을까? 그래서, 눈이 오고나면 1100도로로 올라가 기어이 도로를 막아버린다는 차들 처럼, 나도 눈이 온 중산간의 도로정체에 한 몫을 하고 있었을까? 설국이 된 한라산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겠지만, 도로정체와 운전의 불안을 생각하면 이제는 귀찮은 생각 뿐이다.
문득 육지의 겨울이 생각났다. 눈쌓인 산풍경이 아니라, 얼어붙은 흙 속 모습이 생각났다. 수분이 얼어 흙을 뭉치고, 그 아래로 얼음이 솟아 흙이 들뜬 모습.. 밟으면 퍼석였는지 서걱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겨울의 맨 흙에서 자라거나 버티는 건 작물들이 아니었다. 얼음이었다. 그 겨울이 답답했었다. 오프인 주말엔 서울 도심의 카페투어를 다니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로 시간을 보냈었다. 주말의 도심은 평일에 비하면 차도 사람도 줄어 있었다. 그러나 풍경은 다르지 않았다. 땅에 심어놓은 작물들이 있다는 핑계로 차를 몰아 교외로 나갔었다. 하지만, 겨울엔 그럴 수 없었다. 아이가 생긴 후로는 더욱, 따뜻한 쇼핑몰, 카페, 마크 등등을 전전했었다. 어서 봄이 오길 기다렸고, 어서 이 도시를 벗어날 순간이 찾아오길 바랐다.
오프가 되면 얼른 집에 들어가 잠을 자기에도 바쁜 전공의 생활이었다. 하지만, 피곤함보다도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거대한 도시가 주는 압박이었다. 마음은 불안해지고 정신은 비뚤어지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아내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 텃밭이었다. 경기도 광주 귀여리까지, 오프인 일요일 오전이면 차를 몰았다. 피로 따위는 문제되지 않았다. 분양받은 텃밭에 남들 심는다는 작물들을 심었다. 어떻게 재배하고 어떻게 관리하는 지도 모른 채, 그냥 물 주고 지주대 세워 묶어주었다. 그러고는 반나절을 가만히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 피로는 더 쌓였지만, 가슴 한 가운데로 겨우 공기가 통하는 기분이 들었었다. 사는 일에 호흡법이 있다면, 2주에 한 번 그렇게 텃밭을 오가는 일이 그 시절의 호흡법이었다.
처음 마련한 텃밭은 차로 최소 한 시간 반 거리였다. 그 이후로 텃밭은 점점 가까워졌다. 제주에 와서는 자전거를 타고 갈 만한 거리에 텃밭을 마련하다가, 이제는 마당에 놓였다. 수고롭게 차를 몰아 갈 거리도 아니고, 겨울이면 얼어붙은 땅에 마음을 내려놓을 일도 없다.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마당과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서리내린 겨울에도, 텃밭에는 초록색이 여전하다. 사는 일의 호흡법은 이제 많이 안정되고 익숙해졌다. 아니, 이젠 일부러 호흡법을 생각할 필요없이 일상이 되어 있다. 서리내린 텃밭을 걱정하거나 상상하는 일 없이, 출근길에 마당을 나가면 자연스럽게 보이는 풍경이 되었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텃밭을 경작한 햇수가 올해로 19년 정도 되어간다. 제주에 온 다음으로는 매년 경작했으니 15년차이고 말이다. 이 정도면 텃밭은 정말, 말 그대로의 일상이 되었다. 일상은 숨 쉬는 일처럼 사는 모습 그 자체다. 포기하거나 그만두거나 뗄 수 없는 대상 그 자체..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주변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아진다. 무언가를 하려 해도, 이전에 하거나 가지고 있던 것들을 먼저 정리하고 시작해야 가능한 일이 된다. 하던 취미도 하나둘 스스로 정리하거나 알아서 정리되는 중이다.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하나하나 정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집도 마찬가지.. 이제 나에게 이렇게 큰 집은 무리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그런데, 마당에 텃밭은 꼭 있어야겠다. 떼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아니, 이미 일상이 되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삶에 대전환의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 앞으로의 터전에의 선택지는 그리 넓지 않다.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 하나의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지난 한 달 텃밭에서 한 일이라곤 무 몇개를 뽑아 먹거나 선물한 일이 전부다. 초록은 알아서 겨울을 보내고 있고, 나는 독서와 글 구상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올해 유난히 풍성하게 열린 올리브가 마당과 텃밭 여기저기로 떨어져 바닥이 어수선해진 것이 조금 신경쓰인다. 세상을 혼란스럽게 했던 어느 무식자의 말로는 예상했듯 바른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난데없는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의 슬픔과 삶의 허무가 잠시 나를 스쳐갔다. 하지만, 해가 바뀌며 세상은 자잘한 변화에 적응을 부추기고, 끊임없는 발걸음을 종용한다. 별 수 없이 적응과 종용에 순응하고, 일상이 되어버린 텃밭에서 잠시 땀을 흘리며 숨을 쉬는 생활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다.
맑고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다. 풍경은 포근해보이지만, 공기는 화창한 만큼 차가울 것이다. 여전한 겨울이다. 그럼에도 검은 돌담 안으로 초록이 살아있는 풍경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주섬거리며 자리하고 있다. 명절이 지나고 2월이 되면, 나도 텃밭에 들어가 주섬거리는 풍경이 되어야 한다. 양파 구멍 주변으로 난 잡초들을 뽑아주고, 완두콩을 심어야 한다. 누렇게 바랜 아스파라거스 줄기들을 자르고 멀칭을 거둔 뒤, 자른 줄기들로 잘 덮어 줄 생각이다. 틀밭을 만들고 재배하는 작물을 다양화 하고 나니, 겨울의 쉼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떼어낼 수 없는 일상이라고 선언했으니, 나는 숨을 쉬려면 작물이 자라는 순리대로 움직여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