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둘 것이 많았던 지난 한 달은 텃밭을 방치하다시피 그냥 두었다. 거둘 것이 있나 가끔 들어가는 일 외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너무 덥기도 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다. 뜨거운 한 낮에 텃밭 풀 숲에서 쪼그리고 앉아 모기떼와 싸워가며 뭔가를 하는 일은 점점 버거워진다. 모자와 팔다리가 긴 작업복, 장화을 신고 수건을 매어 중무장을 하고 들어가도, 몸은 점점 쉬이 지쳐간다. 앉아서 작업을 하다가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돈다.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일하다 쓰러지는 것도 볼썽사나운 일이다. 차라리 놔두고 말지.. 잠깐 들어가 먹을 것만 몇 개 거두고, 필로티 그늘로 돌아와 캠핑용 의자와 탁자를 펴고, 다라이에 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라디오를 들으며 맥주 한 잔 하며 한동안의 주말을 보냈다.
손을 대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일을 쌓아간다는 의미다. 그것도 무더운 날에 말이다. 텃밭은 잡초로 뒤덮이고 있었다. 잡초매트를 깔고 멀칭을 해도, 녀석들은 보이는 틈새 곳곳에서 무섭게 키를 키우고 씨를 맺었다. 통로의 잡초매트도 작은 구멍구멍마다 녀석들이 뚫고 올라와 통로를 넓게 뒤덮고 있었다. 고추와 가지가 나온 멀칭구멍에서도 마치 자기들도 작물인 양 고개를 들고 자라 작물들을 뒤덮고 있었다. 무덥고 비가 오지 않는 나날이었다. 마른 날들 때문에 잡초가 그나마 키만 크고 비실거렸지, 비가 충분했다면 고추나 가지 등의 작물들을 뒤덮어버렸을 것이다.
8월은 격한 무더위만큼 먹을 것들로 넘쳤다. 폭염의 날들이 점점 많아지니 텃밭에서 잘 자라거나 버거워하는 작물들이 달라지고 있었다. 수박과 참외는 잘 되는 작물이 되어갔다. 몇 년 전만 해도 수박은 자라다 말거나 자라더라도 작은 상태에서 익고 말던 과일이었다. 이제는 마트에서 사다가 먹는 크기로 자라는데다 속도 너무 잘 익는다. 올해 작은 텃밭에서 수박만 5개 정도를 그렇게 키워 먹었다. 참외도 마찬가지.. 참외는 다 익으면 꼭지가 알아서 떨어졌다. 그런 것들을 주워다가 먹으면 아주 달았다. 올해 실험적으로 심어 본 오크라는 많이 열리지 않았지만, 소소한 찬거리가 되어 주었다. 낫토와 섞고, 된장에 섞어 먹으니 맛있었다. 할라피뇨는 씨앗으로 파종했는데, 무더위를 타고 정말 잘 자라주었다. 몇 개를 따서 피클로 만들어 먹었다. 반면, 너무 더우니 오이는 한시절 잠깐 몇개 열리다 말라죽었고, 방울토마토도 한여름을 견디지 못했다. 오크라와 함께 실험적으로 심은 그린빈도 잠깐 몇 개 매달리더니 덩굴만 여기저기로 뻗다가 여름을 견디지 못하고 시들었다. 가지도 예전같지 않다. 크고 굵은 가지는 예전의 기억 속에만 있었다. 열리긴 하되, 크지 않은 채로 선명한 진자줏빛으로 익어버리고 말았다. 무화과도 점점 더워지는 날씨따라 많이 열렸다. 먹다 남은 것들은 잼으로 만들었다.
가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여전히 덥지만 시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시기에 조금 여유를 두더라도 한두 주 정도다. 9월이 시작되었으니 몸을 움직여야 한다. 여름을 즐겁게 해 주었던 수박과 호박 덩굴들을 모두 뽑아냈다. 마른 잎들이 장갑과 옷에 척척 달라붙는 그린빈 덩굴은 치우기가 번거로웠다. 내년엔 심더라도 덩굴은 피해야 할 듯 하다. 오이와 토마토도 모두 뽑아내고, 지주대도 모두 치웠다. 참외덩굴들도 모두 뽑아내었다. 뽑아낸 작물들 자리의 멀칭 비닐들도 모두 걷어냈다. 잡초들도 모두 치워야 했다. 골갱이를 들고 다시 텃밭으로 들어가, 틀밭 가장자리와 통로를 잠식한 잡초들을 거두어냈다. 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주말 오후의 작업은 너무 버거웠다. 하지만, 주말밖에 시간이 없는 나로서는, 그리고 가을파종시기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한 서둘지 않으면 이제 학회시즌이 시작되어 주말마다 서울을 몇 번 오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버거움을 이겨내야 했다. 모자와 수건과 긴 팔 옷과 장화로 중무장을 하고, 텃밭에 들어가 잠깐 작업을 하다가, 얼른 필로티 그늘로 들어가 캠핑의자에 앉아 얼음물을 마쉬며 쉬기를 반복했다. 옷과 수건은 금방 땀으로 축축해졌다. 그렇게 작업이 마무리 될 즈음에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 거둬낸 잡초를 한 쪽으로 모아보니 양이 상당했다. 이 것도 활용할 방법이 있을 것이란 고민을 해 보았다.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 무 파종자리에 말려서 덮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 땅이 드러난 자리엔 밑거름으로 비료를 뿌려두었다. 비를 맞으며 땅으로 녹아들 것이다.
그렇게 텃밭을 정리하고 한 주가 지났다. 주말 퇴근길에 모종가게에 가 보았다. 가을 모종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우선 무 씨앗과 쪽파를 골랐다. 가을 쌈채소로 로메인과 적치마상추, 치커리를 골랐다. 여름 바질이 아직 자라고 있지만 억세어졌으니 가을 한 철 좀 즐길 수 있을까 싶어 바질모종도 골랐다. 남은 빈 자리에는 무얼 심어볼까 하다가, 고수와 루꼴라 씨앗을 집어들었다. 고수와 루꼴라는 빈자리에 대충 뿌려두면 여기저기 자라나면서 내년 봄까지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스콜같은 비가 간간히 지나 살짝 젖은 틀밭의 흙에 삽을 꽂아넣었다. 땅을 뒤집고 돌을 골랐다. 흙을 정리하고 쪽파 심을 자리엔 비닐멀칭을 깔았다. 구멍을 뚫어주었다. 무 심을 자리는 이랑과 고랑을 살짝 만들었다. 두 줄로 심을 생각이다. 중간중간 얼른 그늘로 들어가 쉬었다. 여전히 날은 더워서 버겁고, 모기떼들도 극성이었다. 파종까지 할까 하다가 골라온 모종들만 빈 자리에 얼른 심고 마무리했다. 몸이 지친 느낌이다. 얼음물을 수시로 마셨는데도 입은 계속 말라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그 와중에 그늘로 데려온 강아지 라이녀석은 자꾸 쓰다듬어달라고 옆에서 치근댄다. 마당에 풀들이 다시 무성해지고 있었다. 예초기를 꺼내 마당과 집 주변 풀들을 깎아주었다. 몸은 폭염 속 마당일에 좀 더 지쳐갔다. 일을 마무리하고, 필로티 그늘에서 저녁을 준비했다. 고기를 굽고 맥주 몇 캔을 마셨다. 피곤했는지 다라이의 물에 다리를 담근 채 잠이 들어버렸다.
날은 맑은데 구름이 많은 아침이다. 해가 있는데도 잠깐 어두워지면 스콜같은 비가 잠깐 쏟아지다 그친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핸드폰에는 폭염경보 문자가 뜬다. 오후엔 비가 온다고 예보가 있었지만, 사실 믿을 일이 아니다. 비가 와야 오는 거겠지.. 글을 마치고 더 더워지기 전에 무를 파종하고, 쪽파를 심어야 한다. 고수와 루꼴라 씨앗도 파종하고 말이다. 서둘러 가을텃밭 준비를 마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