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한 차례도 받지 않았던 학사경고를 받다.

그것도 석사생활을 시작하고 2학기 내내.

by 꽉형 헤어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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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의 석사 첫 학기에 맛보았던 쓰디쓴 구렁텅이. 이 구렁텅이는 2학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첫 학기는 진짜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위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첫 학기니까…‘라는 이 안일한 생각과 함께 말이죠. 첫 단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그 안일한 생각과 함께 첫 학기를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수업을 6개나 신청했고, 시험도 6개 모두 참석했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냥 그렇게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결과는 6개 과목 모두 낙제였습니다. 독일의 성적은 절대평가입니다. 한국에서는 한 강의에 학생이 50명이라면 비율로 해서 몇% 까지는 A+, 몇% 까지는 A0 혹은 A- 등 상대평가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독일은 절대평가입니다. 딱 점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몇 점을 넘어야지 통과. 몇 점을 넘어야지 이 점수 그렇게 말이죠. 그리고 독일의 점수는 1점에서 5점으로 책정이 됩니다. 1점이 가장 높은 점수이고 5점이 가장 낮은 점수입니다. 하지만 5점은 의미가 없습니다. 4점부터가 바로 합격라인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6점까지 정리가 되어 있기도 한데요. 일반적으로 독일의 성적은 이렇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인 1점부터 1.5까지의 점수는 Sehr gut이라고 해서 매우 우수입니다. 한국의 A+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1.6부터 2.5점까지는 Gut으로 A0혹은 A- 정도의 점수라고 판단이 됩니다. 2.5점부터 3.5점까지는 Befriedigend입니다. 만족하는 점수라는 뜻으로 직역할 수 있는데요, 평균적으로 해당 강의를 이해하고 이수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B 정도의 점수일까요?

그리고 4점.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점수인 4점입니다. 이는 Ausreichend라고 해서 충분한 점수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데요. 하지만 충분하다는 의미는 좀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통과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데요, 그것도 ‚간신히‘ 통과를 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점은 Mangelhaft. 쉽게 말해 낙제, 기준 미달이라고 할 수 있죠. 한국 성적의 F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름 그래도 한국 대학에서는 1학년때부터 남들은 한 번씩 받아보기도 한다는 학사경고는커녕 쌍권총도, F도 한번 받아 본 적 없는 그래도 모범생은 아니었어도 꽤나 괜찮은 학생이었던 저에게 이것은 충격이었습니다. 한 학기에 6개 과목을 들었고 F가 6개… 두 번째 학기에는 그래도 나름 선택과 집중을 하자고 4개 수업만 들었지만 2개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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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학은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한 학기마다 최소로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있습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Anhörung이라고 해서 상담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번 학기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혹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이야기를 해야 하고, 어느 정도 참작이 되긴 하죠. 하지만 3번의 Anhörung을 받으면 대학에서 제적을 당합니다. 이게 사람을 굉장히 압박하는데요, 첫 학기에 최소 2개 수업, 그러니까 12 LP를 받아야 하고, 다음 학기까지는 총 24 LP를 받아야 하고, 계속 쌓이게 되죠. 그러니까 저는 첫 학기에 한 개도 못 통과를 했으니 다음 학기에는 4개 수업, 총 24 LP를 모아야 하는데, 이를 또 달성 못했으니 다시 상담을 받아야 하고, 매 학기 이는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좌절감은 쌓여만 가고, 성공의 경험으로 사람은 더 큰 성공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고 하는데, 실패의 경험이 쌓인 저는 점점 더 큰 실패로 나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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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학기 동안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저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언제 다시 Anhörung, 즉 경고 편지가 올지 노심초사했고, 자존감은 또다시 바닥을 찍곤 했죠.

하지만 이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비록 자존감은 밑바닥이었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는 다짐을 가슴 깊이 품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다시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작은 변화의 조짐이 찾아왔습니다. 대학원 과정의 공식 명칭이 바뀌며, 저에게 새로운 선택과 기회가 생긴 것이죠. 어쩌면 이것이 저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과연 저는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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