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맥아, 이스트만으로 만드는 술, 위스키.
글렌버기 증류소를 방문한 길,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위스키의 원천이 되는 수원을 구경하러 나갔다. '글렌Glen'은 '계곡', '시냇물'이라는 뜻이니 이곳은 '버기 계곡’ 쯤 될 것이다. 코가 쨍하도록 맑은 공기에 비 때문에 계곡물이 불어나 콸콸거리며 무섭게 흐르는 가운데 스페이사이드에서 우리의 일정을 안내해준 발렌타인 위스키 글로벌 앰베서더 켄 리지가 흥분되는 얼굴로 바위로 만든 돌담에 달린 푸른색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다른 사람들은 금고 안에 보석이나 금괴, 돈을 넣어두지만 우리는 금고 안에 위스키를 넣어두지요."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위스키와 위스키 잔.
켄이 사람 수대로 글래스를 꺼내 글렌버기 12년을 조금씩 따라 맛보기를 권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렇게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young whisky'라고 부른답니다. 이 비가 땅속으로 들어가 수원으로 흘러가고 그 수원의 물로 최고의 스카치위스키를 만드니까요."
개성 강한 싱글 몰트 글렌버기 12년을 마시며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쨍한 공기와 차가운 빗줄기 덕분인지 아침 10시의 시음인데 전혀 취하지 않는 기분.
떠나기 전 켄이 다시 위스키를 따르며 맛을 보라고 했다. 뭐지, 이 익숙하고 편안하고 기분 좋은 맛은.... "무슨 위스키인 것 같냐?"는 그의 질문에 다들 얼굴만 바라보다, 아, 발렌타인 17년? 이렇게 낯선 곳에서 낯선 시간에 마시니 뭔가 다른 느낌인데, 그래도 역시 좋다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비웠다. 위스키의 근본인 수원에서 맛과 향을 음미하는 짧고 강렬한 아침 시음은 이렇게 마무리.
증류소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경치를 내려다보니 시의 한 구절에서처럼 '술 익는 마을'마다 여기저기 증류소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공기 중에서, 계곡 물에서, 한창 잘 자라고 있는 이끼와 풀 사이에서 위스키 향이 피어오르는 듯하다.
아침 시음에 이어 점심 시음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