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지 Oct 31. 2020

10년 뒤에 나 괜찮을까

잠들지 못하는 어느 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곳에 보이지 않도록 꽁꽁 숨겨둔 감정들이 올라오면 혼란스럽다. 이럴 때 나를 감정 구렁텅이로 집어넣는 질문이 있다.


‘10년 뒤에 나 괜찮을까?’


이 질문에 답변을 찾다 보면 십중팔구 끝이 없는 불안에 빠져든다. 여행을 하며 가끔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친구와 함께 바쁜 여행의 일상을 살아가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길 때 그랬다. 야간 이동을 하는 버스에서, 감기 기운으로 잠들지 못했던 어느 늦은 밤,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어느 도시에서 우울한 기분이 들 때 불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이 질문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감정에 곁을 가까이 내어주진 않았다.



예전에는 내 인생 계획이 불확실해서 생기는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정감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았을 때도 새로운 공부에 인생을 몰빵 했을 때도 이 고민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이제는 자신이 생각한 목표를 착실하게 이루며 큰 실패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도 이 질문은 엉덩이를 걷어차 깊은 우울로 보내버릴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나를 학대하는 일을 그만하기로 했다.


1년에 몇 번 얼굴을 못 봐도 어제까지 만나던 것처럼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 친구에게 연락하면 늘 ‘별일 없지?’라며 안부를 물어왔다. ‘뭐해?’ ‘요즘 어떻게 지내?’도 아니고 특이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스럽게 느껴졌던 친구의 안부인사가 좋았다. 취업준비의 어두운 터널을 함께 지나며 얼굴을 못 본 지도 1년이 흘렀던 때가 있었다. 가끔 최종면접 떨어진 후기를 공유하기도 했고 첫 인턴 경험의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취업준비생들의 대화는 으레 신세한탄인 경우가 많았다. 그 친구와는 달랐던 것 같다. 자소서 쓰는 팁, 면접 준비법, 인턴 연수과정의 과제에 대한 피드백 등 꽤 건설적인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항상 자신의 가장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에게 나도 힘이 되고 싶었다. 


마침내 취업을 했다. 준비해오던 언론사는 아니었지만 관심분야의 공공기관 홍보담당으로 일하게 되었다.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리였다. 비슷한 시기에 친구도 합격소식을 알려왔다. 오랜만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만났다.


사회인이 되어서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무실 분위기, 회사 사람들, 사회초년생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를 마주 보며 하고 있다는 게 기뻤다. 첫 직장에 만족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바닷가 근처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멀리에서 여행 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괜히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커피를 시키고 빵을 먹다가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내가 꿈꿔왔던 일을 시작해낸 친구들은 10년 차의 경력을 쌓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진지하게 들어주는 친구 눈빛을 보자 갑작스레 눈물이 터졌다. 취직을 한 것이 마냥 기뻤는데 사실은 마음의 에너지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입사한 첫 주부터 야근을 하고 어이없는 실수에 혼도 났다. 직장이란 조직의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몰랐던 본심을 나한테 들킨 기분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는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하다가도 특유의 침착함으로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 뒤부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친구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껏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한편에서 커져가던 불안함이 마음속에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못난 것 같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인데 툭 털어놓고 보니 별 것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불안이라는 감정에서 조금 가벼워졌다. 여전히 불안과 함께 살아가지만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내가 지금 불안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려 한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돌아본다. 일상을 정돈하면서 불안에 조금 익숙해질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도움이 된 방법이 있다.


1. 아침 일기 쓰기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본 전략이다. 1) 감사한 일, 2) 기분 좋은 일, 3) 오늘 해야 할 일 3가지를 쓰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세 가지씩 쓰다 보면 하루가 정돈된다. 특히나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던 때 아침 일기를 쓰며 할 일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신기하게도 슬럼프가 길게 왔던 달에는 아침 일기도 듬성듬성 적혀있다. 내 기분 상태와 아침 일기를 성실히 쓰는 것의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침 일기를 쓰다 보니 생산성이 높아진 건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 수준이 높을 때 아침 일기도 열심히 쓴 건지. 분명한 건 뿌듯한 한 달을 보냈던 때를 뒤져보면 아침 일기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으려고 했고 매일 나를 돌아보며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2. 메모하기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의 조각들을 그때그때 휴대전화 어플에 여과 없이 기록했다. 메모들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되기도 했다. 며칠간 가시지 않던 불편한 감정이 어느 날 산책을 하다 정리된 기분이 들었는데 그때 썼던 메모는 이런 것이다. ‘상처주기 싫은 마음은 결국 상처 받기 싫은 마음이었다.’


메모를 통해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한 번씩 다시 읽어보며 심각했던 당시의 기분이 사실은 별 일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모를 통해 매일 조금씩 성장했다.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인상 깊게 들은 대사가 있다. 엄마의 인정이 필요했던 능력 많은 딸이 한 말이다. “걱정 말고 격려해줘요.” 나 스스로에게 내가 해줘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걱정을 이유로 불안을 채우는 대신 나 자신을 격려하려 한다.

이전 03화 여행의 준비운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