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독박 육아

- 그냥,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서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야기.

by 빛의골방




딸 둘을 키우다 막둥이를 낳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나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기계가 된 거 같아..'였다.


미취학 어린아이 셋에 어른 둘. 다섯 식구 수발드는 일은 뭐랄까.. 멈추려야 멈출 수 없는 쳇바퀴를 매일 쉬지 않고 전력질주 하는 기분?

끝없이 먹고 치우고를 반복하며 치우고 돌아서면 물컵, 장난감, 벗어놓은 옷가지, 온갖 과자 부스러기와 지우개 가루 종이 쪼가리들이 공포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뭔가 좀 이 집안일이 끝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엄마란 퇴근이 없는 직업이란 것이 정말 소름 끼치게 와닿는 순간이었다.


이미 육아를 끝낸 분들은 '그래도 이때가 좋을 때다'라며 위로를 건네지만

안타깝게도 마치 꽉 막힌 비닐 안에 갇힌 듯 숨 막히는 상황을 지나는 나에겐 와닿지 않았다.

만약 단 한나절이라도 집안일에서 고개를 돌린 날에는 곧바로 전쟁터가 되고 배고프고 심기가 불편해진 군중은 성난 폭동이 됐기 때문에.


셋째는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무렵 찾아왔다.

당시 코로나에 걸리면 '죽는 거 아닌가..?' 하는 공포감에 시달릴 때라 6살 첫째, 4살 둘째를 기관에도 못 보내고 고 가정보육을 하며 데리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화사들도 재택근무로 돌리고 있던 때인지라 아랫집에 살던 이웃분도 주로 집에서 계셨던 모양. 사실 그분들은 이사를 오자마자 일주일 아니, 6일 만에 집에 올라와서 아이들이 너무 뛴다며 조심해 달라고 하셨다. 너무 놀라서 죄송하다고, 주의하겠다고 하고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곤 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아이를 데리고 있는 상황에 말도 안 통하는 녀석들과 씨름하며 주의를 주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뱃속에 아이까지 품고 있는 상황ㅠ.ㅠ 그렇다고 생판 남한테 내 몸 힘든 거 알아달라고 바라는 것도 웃긴 일이라 집안에 온통 매트로 도배도 하고 나름 잘 봐달라며 귤박스도 들고 찾아가도 봤다. 하지만 이웃은 날이 갈수록 인터폰을 하는 횟수가 늘어 갔고 심지어 아이들이 얌전히 앉아 티브이를 보는 주말에도 시끄럽다며 인터폰을 울렸다.

우리 윗집도 뭐, 밤 12시 근처까지 청소기도 돌리고, 새벽 내내 쿵쿵거리고 뛰는 소리도 들리고 했지만 사실 아랫집 이웃과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꾹 참았다.

코로나 시절은 물론 온 국민이 힘든 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도 몸고생과 마음고생이 합쳐져 마치 꽉 막힌 감옥에서 숨소리조차 못 내고 갇힌 기분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막내가 태어났다. 이제 세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남편은 뭐라도 더 하겠다는 마음으로 새벽 배송을 시작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낮과 밤이 바뀐 일을 한다는 것이 사람 피를 말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처음에는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일하러 나가는 남편이 걱정도 되고 너무 안쓰러웠다. 그런데 낮에는 자고 밤에는 일하는 덕분에 안 그래도 육아에 관심 없던 남편은 합법적인 '육아 독립 선언'을 하고 말았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도 그는 조기축구를 비롯해 체력 관리를 위해 수영을 꼬박꼬박 다니셨다. 보통의 남편들은 그동안 해오던 취미가 있어도 아이가 생기면 중단한다는데 말이다. 또 보통의 남편들은 딸 바보들이 된다는데 우리 남편은 귀한 딸을 둘이나 안겨 줬는데도 잘 놀아주지 않았다. 딸들이라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만 남긴 채 본인은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틈틈이 취미도 즐기고, 쉬는 날은 밤새 유튜브도 즐겼다.

덕분에 두 딸은 무서울 만큼 엄마 껌딱지가 되어갔고 혼자 외출하는 건 감히 생각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한 번은 너무 화가.. 정확히 화딱지가! 나서 그냥 "알아서 애들 픽업해!"한마디 남기고는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갔다. 그리고 안국역에 내려 막 아무 데나 걸었다. 혼자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오기가 나서 막판엔 혼자 극장 가서 영화도 봤다. 해필 그 영화가 '82년생 김지영'이었는데 무슨 사연 있는 여자처럼 펑펑 울었다. 사실은 '해필'이 아니라, 울고 싶어서.. 하루 종일 울먹 거리며 참아 왔던 울음을 영화에 숨어서 울고 싶어서였다.


실컷 울고 나왔지만 크게 개운치는 않았다.

'치- 김지영은 남편이 다정한 공유지만.. 난 돌아가면 또 독박이잖아ㅜㅜ'


혹자는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애 키우는 게 뭐가 그렇게 징징거릴 일이냐, 지 새끼 지가 키우면서 뭐 그렇게 힘드냐, 힘들면 낳지를 말지 뭐 하러 셋이나 낳았냐 뾰족하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난 결혼 이후 계속 주말에 일을 해왔다. 그 일을 위해서는 주중에 준비를 해야만 했고, 아이들이 등원을 한 이후에도 사실 편히 쉬어 본 적이 없다.

일을 놓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벌이가 많지는 않아도 조금이나마 가게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요즘은 황혼육아도 많다지만 양가 부모님들도 연세가 많으셔서(?) 아이들을 맡겨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엄마에게 집으로 와 줄 수 있는지 부탁한 적이 있었지만, 너무 멀어서 가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때 당시 대중교통으로 약 두 시간 거리라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사실 너무 서운했다. 난 뭘 부탁하는 일도 어려워하고 또 한 번 거절당하면 두 번은 못하는 성격이라 그 후 한 번도 친정에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결정적으로 셋째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의 차가운 반응은 아직도 쓰리다.

그럼 남은 사람은 남편뿐인데, 이미 말한 것처럼 그도 기댈 언덕이 되어 주지 않았다.

육아는 그야말로 인내, 인내, 인내가 생명인데 그는 굉장한 다혈질의 사람이라 금방 폭발해 버렸고 난 그 뒷수습을 해야 했기에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포기하게 되었다. 아이가 자다 깨서 우는 게 싫어서, 자긴 일하러 나가야 하니까 둘째가 태어나고는 곧 따로 자기 시작했고 지금도 애가 왜 자다 깨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딸들이 변덕은 얼마나 심한지, 등원 전에 옷을 몇 번을 갈아입는지, 밥먹일 때마다 얼마나 진이 빠지는지, 씻길 땐 허리가 얼마나 끊어질 것 같은지, 본인은 화장실에 30분씩 앉아 있지만 맘 편히 화장실 한 번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심지어 다 재우고 씻으러 들어가도 귓가에 애기 우는 소리가 들려 뛰쳐나오는 일도 아마 모를 거다.


그렇게 나는 늘 아이들과 함께 있었지만


참 외로웠다.


어떻게 이런 전쟁통에 외로울 수 있지? 하지만 정말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내 목숨만큼 소중한 생명들이 너무 귀했지만 매일의 일상은 숨이 막히고 어지러웠다. 그렇다고 다른 세상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나만 바라보는 눈동자가 6개나 있었기 때문이다. 버티고 버텼지만 터져 나오는 화를 스스로 주체할 수 없게 되면서 그 때문에 내 소중한 존재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 늘어가던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병원을 찾아갔다. 왠지 상담을 받으러 가는 일이 나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우울증 약을 먹는 일도 겁이 났지만 지키고 싶었다.


'엄마의 자리'를.


진단은 예상대로 우울증이었고 상담사는 뭔가 주변에 도움을 받을 사람들을 찾아보길 권유했다. 애초에 도움받을 사람들이 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찾아왔을까-하는 마음이었으나 나는 그냥 내 상황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사실 후련했다. 무엇보다도 여기 오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고, 그 어려운 한 걸음을 뗀 것만으로도 뭔가 큰 일을 해낸 듯 힘이 차올랐다.



결혼 십 년 차. 육아 구 년 차를 지나고 있지만 난 여전히 막장 독박 육아 중이다.

인스타에 나오는 똑 부러지는 엄마들처럼 살림도 그림 같고, 아이들이랑 교감도 잘하고, 남편이랑도 다정한 그런 완벽함을 찾아보기는 좀 힘들다. 오히려 더 글로리에서 동은이랑 현남의 대화에서 동은이 독백처럼,


'이 사람과 나는, 우리는 왜 매일 힘을 내야 하는 걸까? 힘내는 거 힘들어. 힘내는 거 너무 지겹다..'


나는 매일 고되고, 처절하고, 자책하고, 이제는 그만 좀 힘내고 싶은데.. 또 힘을 내야 하는 지질함에 가깝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넋두리라.. 사실 아직도 더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피곤함을 전하는 글이 될까 염려가 앞선다.


비록 멋들어지진 않지만 내 안에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종이비행기 곱게 접어 날려 보낼 때 나와 같이 외로운 누군가에게 고이 닿기를, 밝기만 해보이는 세상에도 함께 울 준비가 된 사람이 있다는 걸. 그렇게 한 줄기 가랑비 같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5화잠 귀 밝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