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만들어 내는 공명의 공간에 자신을 쉬게 하자!
쉬고 싶고 차분히 정리하고 싶은 순간에는 밀크티를 마신다. 우유와 홍차 그리고 약간의 설탕이 들어간 밀크티를 마시면 손해 보지 않는 순간 즐기기로 평온한 만족감이 밀려든다. 정제된 홍차와 부드러운 우유의 맛이 다급하고 긴장된 마음을 밀어내고 휴식할 공간을 만드는 듯하다. 20대 인도를 갔다가 느닷없는 스콜 같은 비를 무차별적으로 맞고는 덜덜 떨며 길을 헤매다 호텔로 들어갔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라운지로 내려와 마신 것이 밀크티였다. 안식처에 도착해 긴장된 감각이 이완을 끌어들이는 교차지점에 밀크티가 있었다. 참 평온하고 따듯한 감각이 지금도 살아서 힘든 순간에 위로가 된다. 기억이 아니라 감각이 만들어내는 공명이 시간을 초월하여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다. 힘든 순간에 쉼을 만들고 은근히 누리고 싶을 때 홍차는 나에게 완벽한 안전지대를 선사한다. 삶을 행복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사소할지 몰라도 안전지대가 필요하다. 이런 안전지대는 누구와도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순간을 선사한다. 이를 통해 쉬고 에너지를 얻고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만의 ‘안전지대’, 참 근사하고 위로가 되는 말이지 않는가? 위로가 된다는 것은 마음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마음의 결핍과 상처를 치유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팽팽하게 긴장된 순간, 긴장을 놓지 못하는 순간 속에서 특별한 시간이나 장소는 긴장을 풀고 다시 달려갈 힘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감각적 평온함이다. 요즘 ‘케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자신만의 안전지대를 찾는 사람들의 필요성을 반영하는 듯하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을 뜻한다. 원래 투우장에서 투우사가 꽂은 창을 매달고 피범벅이 된 소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피난처를 뜻한다고 한다. 소에게 케렌시아는 흥분과 공포, 위협에서 마지막 일전을 위해 숨을 고르는 피난처라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케렌시아는 자신만의 휴식 공간을 의미한다. 동네 카페나 코인 노래방, 수면 카페, 햇볕이 잘 드는 서점의 귀퉁이, 고궁이나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나무 밑 벤치, 강가에 주차한 차 안, 옥상 등 그곳이 어디든 자신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며 정서적 안정감과 만족감을 주는 곳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긴장과 이완의 자연스러운 균형 속에서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외부의 자극과 단절이 적절하게 어우러졌을 때 행복하다. 하지만 오늘날 삶이라는 것이 항상 긴장되어 쉽게 이완하지 못한다. 외부의 지속적인 자극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으로 걱정과 근심, 책임에 묶여 외부와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단절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자신만을 위해 휴식하고 즐기고 몰입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안전지대는 개인에게 부가가치가 높은 투자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삶을 잘 누리는 하나의 현명한 방식이기도 하다.
나만의 안전지대가 필요한 것은 단순히 휴식이기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이란 책에 보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내 곁에 존재한다는 건 모진 세상을 살면서 쉬어 갈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든다는 의미일 테니까”라는 구절이 나온다. 안전지대가 특별한 장소, 시간, 음식이나 행위, 마음이 담긴 추억의 기억이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과의 만남이 될 수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과의 소박한 공유의 시간이 최고의 안전지대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여행이 행복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의 자극적인 일상과 단절하면서 여행은 훌륭한 안전지대의 역할을 한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연결도 만들어지지만 기존의 일상과 단절을 통해 조금은 가볍지만 새로움에 반응하는 자신의 존재를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은 힘들고 지칠 때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과 만나는 짧은 여행으로 자신의 안전지대를 누리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이런 안전지대는 휴식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느끼게 하고 보다 열린 나를 만나게 해 준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런 시간을 누리는 자신은 그대로 의미 있는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 속에서 이 순간을 독점적으로 누리고 있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 자신을 사랑해라’, ‘자신을 받아들이고 수용해라’라고 말하기보다 자신만의 안전지대에서 짧은 순간이라도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온전히 누리고 시간을 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억수같이 소나기가 내리면 우리는 감각적으로 피할 곳을 찾는다. 그렇게 피한 곳에서 의무감을 느끼는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모든 소나기가 그칠 것을 기다리며 감각과 신경이 중지되고 그 틈으로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빨리 우산이라도 사서 급한 불을 끄듯이 전진해야 할 경우는 제외하고는 그 평온함을 잠시 누릴 필요가 있다. 일상에 지치는 것은 항상 억수 같은 소나기나 큰 파도 같은 일 때문은 아니다. 잠시의 휴식도 없이 팽팽하게 긴장된 마음으로 여유를 만들지 못하고 자신을 소외시키며 끌려가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관성을 끊고 자기 안에 존재하던 치유와 회복의 힘을 끄집어내는 곳이 안전지대다. 어떤 삶을 살든 삶을 행복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안전지대가 필요하다. 어떤 일상이도 내 삶을 누리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만의 안전지대가 필요하다. 본의 아니게 소외된 나를 챙기고 삶을 수혈하는 안전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