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분별하되 집착하지 않는 유연함,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무의식적인 습관'이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한다면 그것은 진짜 옳은 일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되 집착하지 않는, 강박과 지나친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는 유연성이 필요할 때가 많다.
지나치게 옳고 그름을 따지고 살면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진다. 반복되는 내적 갈등과 혼란, 나아가 쉽게 분노하게 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무의식적인 습관 때문인지 모른다. 세상이 옳고 그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세상이 그렇게 완벽하지도 않고,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도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연속선의 스펙트럼처럼 변하는 세상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에 치중하다 보면 원하지 않는 대립과 갈등에 스스로 갇히고 가두는 일이 늘어난다.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무의식적인 습관’ 때문에
내면은 언제나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옳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혼란과 불안, 우울과 분노가 쉽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 나누고 사람들이 옳은 쪽에 서 주어야 한다고 믿고 기대한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항상 그런 세상은 없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습관은 타인과 세상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대를 만들고 결국 자신을 치게 된다. 비합리적인 기대는 타인의 평가, 반응, 세상이나 타인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에 민감하게 만든다. 그렇지 못할 때의 절망감은 우울과 좌절을 통해 분노로 표출되기 쉽다. 훨씬 많은 내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에 함몰되면 차이를 인정하기 힘들어진다.
‘다름’이나 ‘차이’는 옳고 그름과 구분된다. 옳고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르고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좋고 싫음의 차이도 옳고 그름과 구분되어야 한다. 옳고 그름에 치중하다 조면 이른 다름과 차이가 틀린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좋고 싫음의 감정적 차이, 습관이나 취향, 문화적으로 학습된 가치관 등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불필요할 때가 많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은 옳고 그름 보다는 차이를 인식하고 조율해야 할 것이 더 많다.
옳고 그름에 치중하다 보면 변화를 수용하고 직면하는 것이 힘들게 된다.
세상은 더욱 다양하고 변화도 빠르다. 자연스러운 변화가 옳은 것을 공격하는 듯 혼란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변화와 성장, 성숙을 방해한다. 변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판단하게 되면 저항하게 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넘어설 때 다른 차원이 열리게 된다. 옳고 그름의 관념을 벗어나야만 변화와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고 양식이다. 옳은 것을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을 끌고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확실성에 안정감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상황을 통제하고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 옳고 그름의 판단과 분별도 중요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집착하는 마음이 세상에 그대로 투사되면서 자기 내면의 평화와 중심을 해치고 성장을 방해한다면, 세상에서 자신을 가두고 고립시킨다면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실타래를 풀어보면 어떨까? 좀 더 편안해질 필요가 있다. 어깨의 짐을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 춤추게 하라
-칼리지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