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헤어지거나 대화를 끝맺음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다는 듯이 우리는 ‘다음’을 남발한다. 이렇게 말하는 모두는 알고 있다. ‘다음’을 실천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그저 인사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와타나베 이타루의 빵집 ‘다루마리’는 돗토리현에 있다. 그의 책을 읽었을 당시, 그의 철학도 너무 좋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빵집에 방문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일었다. 기왕이면 그의 책을 들고 가서 직접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싶다고 생각했다.
공기 맑고 물 좋은 산 중턱에 위치한 빵집 다루마리. 와타나베 이타루는 이곳에서 천연균을 채취해 천연효모로만 빵을 만든다. 맑은 오지만 고집해 일부러 돗토리현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공기 중에 천연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니 얼마나 맑은 곳인지, 거기선 숨만 쉬어도 내가 정화될 것만 같았다.
언젠가 돗토리현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방문하리라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돗토리현으로의 여행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늘 그렇듯 내 여행은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 (나는 이걸 변덕이라 부른다)로 이루어지는데, 돗토리현도 출발 일주일 전에 갑자기 정해졌다. 여행 메이트인 동생이 개학을 일주일 남기고 시간이 촉박했고, 아이가 방학 내내 공부하느라 고생해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급결정된 여행이었다.
비행 스케줄은 2박 3일, 숙소와 동선, 차량까지 예약하고 모든 여행준비가 끝나자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단어가 떠올랐다. ‘다루마리’ 즉 돗토리현에 가면 다루마리에 가야 한다는 문장이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다.
일단 위치부터 확인하기로 한다.
우리의 일정과 겹치는 곳에 있다면 좋겠지만, 다루마리는 천연효모빵을 만드는 곳이라 했다. 돗토리현이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바닷가나 시내중심가에 있을 리가 없다. 찾아보니 역시 빵집 다루마리는 다이센야마라는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다.
몇 번 일본 상공을 오가며 다이센야마를 본 적이 있다. 후지산과 비슷하게 생겨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봄까지 산중턱에 눈이 쌓여 있는 곳. 후지산보다 투박하게 생겼다. 다루마리는 이 산속에 있구나. 안타깝게도 우리 일정은 전부 시내였고, 다루마리에 방문하려면 하루를 꼬박 써야 했다.
게다가 운전자는 동생이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에 하루를 전부 바칠 순 없었다. 돗토리현 비행 스케줄은 3일과 7일 두 개였다. 그러니까 이 말은, 시내에서도 놀고 다이센야마까지 방문하려면 일주일 코스로 가야 한다는 얘기....
“다음에 가 다음에”
내가 아쉬워하자 동생이 가볍게 ‘다음’을 꺼냈다.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고집을 부릴 순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요괴마을이니 미술관이니 애들 위주의 스케줄을 짰다. 게다가 다이센야마는 우리의 동선과 반대방향에 있었다.
자유여행을 다녀본 사람은 잘 알 테지만, 여행에서 시간을 아끼는 방법을 동선을 잘 짜는 것이다. 일정이 짧을수록 가는 길에 들러야 하는 코스로 짜는 게 시간 낭비를 줄인다. 돗토리현에 도착 후 공항에서 렌터카를 기다리는데, 사무소 직원이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산을 다이센 야마라고 소개한다. 아름다움을 보며 처음으로 속이 쓰렸다.
눈 덮인 다이센 야마는 숙소를 찾아가는 내내 우리 시선 앞에 병풍처럼 서 있었다. 운전하는 동생은 멋지다를 연발했지만, 나는 다루마리를 생각하며 아쉬움만 가득 느꼈다. 우리의 돗토리현 여행은 나름 즐거웠다. 비록 비 오고 추웠지만.
갈까 말까 할 때는 가야 한다. 여행지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그건 나 혼자만의 여행에서나 가능한 일일 듯하다. 해서 여행은 늘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그런 이유로 ‘고독의 기쁨’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질 듯하다. 다음에는 나 혼자 오롯이 나만의 기쁨을 위해 여행하고 싶다. 그땐 우핸들 운전도 척척 해내고 싶다.
생각해 보니 ‘다음’이란 말이 그다지 무책임한 말로 들리지 않는다. '다음에' 라는 말에는 기대와 신뢰가 깃들어 있다. 나는 한층 더 그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긍정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걸, 스스로 다음을 기약하며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