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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Jun 08. 2024

방콕 샹그릴라 수영장에서 느낀 것

심연으로부터 헤엄쳐 나오기

 그 풀장의 가장 깊은 곳은 2.4미터였다.

그 앞에서 수경을 가다듬고 있으니 높은 의자에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보던 안전요원이 친히 내려온다.



"여긴 깊어요. 위험할 수 있어요. "


 알고 있다고 하자 그는 퍼펙트라며 엄지를 보여줬다.


 엄마가 수영을 배우니 너무 좋다고 딸아이가 오랜만에 웃음을 베푼다. 확실히 수영을 배우니 여행의 맛이 달라졌다. 아이는 2.4미터 수영장 바닥을 찍고 올라오자 한다. 처음부터 바닥으로 잠수하기는 쉽지 않았다.  단, 바깥에서부터 점프하며 뛰어들면  번에 바닥까지 닿을 수 있었다.


 바닥을 딛고 수면 밖으로 올라오기몇 번 하니 아이는 이번엔 반대로 손을 찍자고 한다. 손을 찍으려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니 수압 때문에 귀가 몹시 아프다. 수경에도 물이 차 시야가 흐려지자 이내 정신이 흐트러지고 수면은 아득히 멀다.  어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숨을 몰아쉬고 싶었다.



나 자신으로부터 헤엄쳐 나오기란 이와 같다는 생각이 불쑥 물거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깊은 물은 나의 과오다. 무의식에 침잠한 그림자이며 나를 붙들고 괴롭히는 모든 것이다. 물의 저항을 못 이겨 무기력에 빠지면 그대로 수장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헤엄쳐 나오는 것만이 나의 할 일이고, 살 길이라는 생각.



 누구나 다 자신 안에서 허우적대며 살아간다.


 허우적대면서도 우리 모두는 가면을 쓴다. 나를 벗어나 객관적으로 나를 들여다본다는 건 힘든 일다. 그럼에도 헤엄쳐 나와야 한다. 못난 오류투성이 나로부터. 평생이 걸릴지라도 말이다.



 몇 년간 계속되는 무기력, 십 수년째 복용하고 있는 약, 그에 따른 부작용, 나는 기저질환에 갇혀 나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내가 자유를 갈망하는 건 관념적인 걸까. 그냥 하잘것없는.




 이 날 이후로 수영 강습에서 자유형을 연습할 때마다 호흡의 부침이 심해졌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자유를 추구할수록 마음속의 누군가가 통렬하게 나를 꾸짖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내가 원한 자유에 책임을 안아야 한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쓴 와타나베 이타루는 쓸고 닦는 청소를 하는 자질구레한 일조차 자신을 위한 수행이라고 했다. 그의 책 속 문장 중 유달리 와닿았다. 한때 템플스테이에 꽂혀서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돌아다다. 20대 이별 후였고 원망이 아닌 수행하는 마음을 배웠다.


 

 일상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아침루틴을 실천한다. 한때 루틴을 철저히 따르는 삶을 비인간적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지금은 잘 안다. 루틴을 따르지 않으면 일상은 쉽게 허물어지는 모래성일 뿐이라는 걸.  마음이 나약해지고 정신이 흐트러질수록 쓸고 닦는 일, 인스턴트가 아닌 밥을 지어먹는 일, 정해진 시간에 수영(운동)하러 가기, 내가 나를 돌보는 '수행'에 정성을 다한다.



 수행은 나를 꾸짖는 것과 동시에 나를 지키는 일이다. 내가 먼저 나를 지켜내야 나를 빠져나올 있는 힘을 기르고 나를 들여다볼 다. 일상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달게 삼킨다면 자유와 성찰과 책임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 



 분명 수영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점점 나를 다지는 글이 되어간다. 수영을 배우며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일상가지런하게 고 싶다. 영은 자기를 계발하게 되는 이상한 운동이다.






심연(深淵) :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지만,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 위대한 높이를 위한 끝없는 깊이, 도약을 위해 감수하는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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