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용 수영복은 대부분 브라캡을 탈부착할 수 있는 구조다. 수영복 안쪽에는 브라의 고리를 걸 수 있도록 박음질이 되어있지만 대부분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실리콘브라를 사용한다. 처음에는 고리형 브라를 착용했지만 몇 번 세탁하니 너덜너덜해졌다. 실리콘브라를 사용해 보라는 동생의 말에 수영하다 중간에 브라가 도망가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다.
괜한 기우였다. 실리콘브라는 물의 부력을 만나자 찰떡처럼 몸에 착 붙었다. 이래서 다들 수모도 실리콘 재질로 바꾸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얇은 실리콘은 물속에서 인간의 신체에 아주 잘 달라붙어 주었다.
어느 날 수영이 끝나고 샤워를 하는 중이었다. 여자 샤워실은 늘 만원으로 조금만 늦어도 줄을 서야 한다. 그날도 머리를 감는 내 뒤로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서둘러 머리를 헹구고 주섬주섬 샤워바구니에 물건들을 챙겨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머! 가슴! 내 가슴!”
어떤 할머니의 외침이 샤워실 수증기에 묻어 둔탁하게 울리고 있었다. 뒤돌아 보았지만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샤워실 문 밖을 나서는 나의 몸을 누군가 낚아 챈다.
“내 가슴이라니까!!”
“네?”
가슴이라니? 이게 무슨 영문인가?
나를 쫓아온 할머니는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해 보였는데 목소리만은 쩌렁쩌렁했다. 내 손에 들린 샤워바구니를 낚아채더니 내 실리콘 브라를 잡았다.
“이거 내 가슴이라고!”
그제야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니 실리콘 브라가 한 쌍 더 들어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머리 감는 틈을 타 할머니는 자신의 실리콘브라를 내 선반 위에 올려둠으로 그 자리를 맡아두셨던 것이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할머니들은 왕왕 그러신다) 나는 선반 위의 브라가 당연히 내거라 생각해 바구니 안에 챙겼던 것이다. 저 밑바닥에 깔린 내 브라는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고 내 가슴 여 있네!!”
목욕탕으로 다시 들어간 할머니의 목소리에 안에서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나도 피식하고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할머니의 가슴 분실 사건(사건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은 그 후에도 종종 떠올릴 때마다 웃음을 자아냈다.
추후 탈의실에서 대화로 알게 된 건 이랬다. 딸이 인터넷으로 수영복이며 실리콘브라며 전부 주문해 준다고 하신 할머니는 그걸 잃어버리면 멀리 사는 딸에게 또 부탁을 해야 하니 번거롭지 않겠냐 하셨다. 수영하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좋은 브랜드며 좋은 장비는 잘 모른다고 하셨다. 수영을 해야 몸이 안 아프니 그저 가지고 있는 가슴을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언젠가 내게도 저 시간이 올 것이다. 브라라는 말보다 가슴이라고 외치는 게 더 편한, 어찌 보면 천연덕스러운 나이가 올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이 혼란스러워 자식에게 많은 걸 부탁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바람은 하나다. 몸도 정신도 건강한 할머니가 되는 것. 그러려고 수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