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칭과 간단한 체조를 하는데 이때 보면 꾸부정한 자세의 할머니들이 꽤 보인다. 물속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무릎이 안 좋거나 허리가 안 좋으신 분들은 걷는 자세도 엉거주춤이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가면 달라진다.
나이를 잊고 통증을 잊은 듯,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는 모습은 그저 감탄만 자아낸다. 처음엔 그분들이 수영을 그토록 ‘잘’ 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물 밖에서 펭귄처럼 걸었다면 물 안에서는 물개처럼 헤엄친다.
그분들에게 수영은 살려고 하는 생존운동일 것이다.
물의 부력을 진통제 삼아, 관절의 통증을 잠시라도 잊는 자유의 순간일 터이다. 처음엔 저항감이 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호흡도 힘들고 물도 많이 먹었을 테고, 유연성도 근력도 젊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자신의 몸을 원망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임계점을 뛰어넘은 그들의 모습은 여유롭고 멋졌다. 그들의 수영실력은 연륜만큼이나 빛나 보인다.
거침없지만 묵묵히 물살을 가르는 상급반 어르신들을 보며, 내가 나도 모르게 이유를 찾고 있었음을 알았다. ‘이런 내가 수영을 하는 게 맞나’라는 건 실력이 늘지 않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가,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핑계를 대고 싶어 하는 거였다.
물에 대한 공포감도 무기력한 마음도 내가 극복해야 할 나의 문제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불안을 이기기 위한 게 아닐까. 인간은 불안하기 때문에 공부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운동하고, 불안하기 때문에사랑한다.불안은 인간의 디폴트 값이기 때문이다.
두렵고불안하기 때문에 움켜쥐고 싶은 모든 것에 나는 애틋함을 느낀다. 삶 그 자체를 애틋하게 연민하며 그저 가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다 불안을 껴안고 산다.
독서나 자기 계발 또는 운동이나 자기 존중 등 여러 방법으로 그 거대한 불안을 조금씩 녹이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여러 방법이라 썼지만 결국 저것은 모두 자존감으로 직결되는 것 같다) 실력도 늘지 않는 수영을 배우며 한 가지 더 배운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
저 임계점까지 도달해 보자.저기까지만 가면 새로운 감정이 3월의 연둣빛처럼 돋아날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있다면, 한 번 마음먹으면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하는 것. 꾸준함도 재능이라 믿는 것이다.좋아하는 게 있다면 꾸준히 해봐야 한다. 이게 내게 맞는 길인지 알게 되기까지 꽤 오래 걸린다는 게 단점이지만, 그럼에도 꾸준함 밖에 없다. 시간이 주는 선물이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믿는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이거였다. 별 재능도 특별한 장점도 없는 내게 꾸준함은 유일한 덕목이다. 하기 싫은 마음, 귀찮은 마음을 넘어섰다는 데에서 오는 희열은 나 스스로를 믿게 하고, 더 많은 걸 도전하게 만든다.
수영도 글쓰기도 포기하지 않길 바라며,나는 주섬주섬 수영 가방에 조각난 마음을 주워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