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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Jun 22. 2024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면 세계가 바뀐다

수영의 최종 목표는

책장을 정리하다가 2007년의 다이어리에 쓰인 버킷리스트를 발견했다.


터키여행, 프리다이빙, 중국어 공부, 어쩌면 결혼할지도....


라고 쓰여있다.

중국어는 세 달 만에 포기한 기억이다. 터키는 가지 못했다. 당시에 만나던 사람과 결혼하면 터키 주재원으로 가게 될 것 같아 터키어 사전을 사서 공.부.준.비를 했다. 준비만 했다. 결과적으론 주재원도 무산, 터키여행도 무산. 결혼만 덜렁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사기결혼을 당한 것 같다.



그리고 프리다이빙.

수영도 못하면서 프리다이빙이 배우고 싶었구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걸핏하면 프리다이빙 영상을 보곤 다. 물속을 자유자재로 가로지르는 사람들. 인어 같은 몸놀림. 아름다운 바닷속. 홀린 듯 보곤 했다..


 그 풍경은 어쩐지 용기를 주었다. 물 속이라면 어떤 저항감도 부드럽게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물 속이라면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도, 탄력 받아 위로 오르는 것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호흡과 수압에서 인간의 몸이 자유롭다면, 가끔씩 해저 밑바닥에 들어가 앉아 있다 왔으면 좋겠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많구나고 생각한다. 그럴 때면 물속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귀가 한 겹 막힌 채로 들리는 물속의 소음은 마치 세상의 어떤 소리에도, 어떤 시선에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흔들리는 수초와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사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저절로 참선하는 마음이랄까.

     

 그러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물속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나는 변덕스러운 내가 낯설다. 인생도 알 수 없다. 내가 수영을 배우고 재미를 붙일 것이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면 세계가 바뀐다고 하더니 정말이지 매우 그렇다.  (이럴땐 부사를 아끼고 싶지 않다)

신체 단련뿐만 아니라 정신을 각성하게 되고,  감정적으로도 한결 유연한 사람이 된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더 잘 참을 수 있게 되었다. 내면의 힘을 키우게 된 것이다.


 여행에서의 부침이 여유로워졌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외국에서의 운전도 도전하고 싶다. 운전이든 수영이든 몸으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들을 대하며 나는 나를 톺아본다. 그들은 이상하게 마음을 긴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나는 아마도 언젠가 프리다이빙에 도전할 것이다.

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모든 일들을 불현듯 해내지 않았던가? 그러려면 일상의 루틴이 잘 잡혀있어야 한다. 새벽 시간에 책을 읽고, 인스턴트는 가급적 먹지 않으며 정해진 시간에 수영을 하러 간다. 그날 해야지라고 마음먹은 일이 있다면 반드시 그날 해낸다.  작은 루틴을 차곡차곡 쌓으며 일상을 정성껏 살아내고 싶다. 이 고요한 쌓음은 뭐든 도전하고 해내는 사람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아마도 언젠가 터키를 여행하고 있을 것이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게 된다면, owl city의 hot air balloon을 귀에 꽂아넣고 싶다.  2007년으로부터 17년이 흘렀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록을 다시 고쳐 쓴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초보자의 마음을 기록하고 싶어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시작했고 어느새 1년이네요.  글을 쓰며 발견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는 긍정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  무기력과 불안감에서도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영을 익히는 속도처럼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말이죠.  느리면 뭐 어떤가요? 그 시간 속에 촘촘히 영그는 내가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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