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작가, 젊은 환자
광복절 즈음, 곧 진행될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작년 7~8월에 아시아프 전시와 갤러리 단체전을 했으니 전시로는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찾게 된 서울이었다. 기차에서 서울 풍경이 보이자마자 그립고 익숙한 향기가 풍기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듯 편안하고 설레는 마음! 다만 전시 내내 이곳에 머물지 못한다는 게 조금 아쉬웠는데, 아쉬움은 일단 내려놓기로 했다. 이번엔 전시를 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이제껏 쌓은 포트폴리오를 통해 참여하게 되었다는 자체만으로 큰 의미였으니.
작품 설치는 다음날 오후 1시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느즈막히 도착한 나는 여유 있게 쉬며 숨을 돌린 후 다음날 한창 점심시간일 때 작품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갤러리로 출발했다.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서울 시가지를 구경했고 하나 둘 기억이 있는 거리와 달라진 풍경을 눈에 담는 재미 덕분에 도착할 때까지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지나가는 거리마다 직장인들이 보였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일하러 들어가기 전 숨을 돌리며 잠깐의 여유를 부리는 모습들. 그중에 특별히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청년 직장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는 다른 곳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안에 속해있는 누군가는 재미없고 벗어나고픈 일상이라고 여기겠지만, 나는 조금 아스라한 눈빛으로 직장인들을 바라봤다. 건강했다면 지금 저런 풍경 속 한 인물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만약의 상상을 하면서.
하지만 그 풍경을 보는데 예전처럼 삶을 빼앗긴 듯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아, 저런 삶도 있었지-' 하는 생각을 했달까. 그 반응으로 알게 됐다. 이제 저 삶은 내 삶이 아니라는 걸 정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상처에 앉은 딱지가 만져지는 듯했다. 만나지 못한 삶과의 이별, 그 이별의 애도가 끝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전시가 끝난 시점에 예술인활동증명(예술인 복지사업 참여를 위한 기본 절차로, 예술인 복지법 상 예술을 '업'으로 하여 예술 활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제도) 확인서를 받았다. 나도 국가의 보호를 받는 예술인이 된 것이다. 무슨 상을 받은 것도 아니건만 차곡차곡 어렵게 쌓아온 활동을 통해 공식적으로 작품 하는 사람임을 인정받으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타이밍이 놀랍게도 증명서가 나온 1주 후에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에서 시행하는 창작준비금지원 사업 신청이 시작됐다. 예술인활동증명으로 지원 자격이 생긴 나는 곧바로 지원금을 신청했다. 한 달의 시간을 기다린 끝에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나는 신진예술인 창작준비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나라의 지원을 받아 작품을 하게 되다니! 덕분에 요즘은 받은 지원금으로 어떤 작품을 하면 좋을지 즐거운 고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점차 ‘건강했다면 살았을 삶’을 돌아보지 않게 된 건, 이렇게 여러 노력 끝에 믿음 안에 ‘지금의 삶’에 집중하면서 조금씩 작은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란 참 오묘하다. 어제 내가 가지 못 한 길, 살지 못한 삶이 있어 슬퍼하고 마음 아파했지만 그 대신 오늘 상상도 못 한 다른 길,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하고 전시 활동을 하고 예술인으로 인증을 받고 창작지원금을 받는 등, 예술의 길로 깊이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생경함과 놀라움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를 떠올리면 내겐 정말 꿈만 같은 나날이니까. 사랑하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날마다 놀랍도록 세세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지금의 모든 나날들이 선물 같다.
물론 내가 작품을 하게 된 것과 별개로 환자인 신세는 변함이 없다. 내 컨디션은 늘 바닥이고, 최근에도 아픈 몸 때문에 가족들에게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일 때가 있었다. 또 작업하는 동안엔 힘이 겨워서 왜 이걸 하고 있는지 혼자 회의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여전한 것들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한다.
그럼에도 난, 내가 지금 사는 이 삶이 진짜 내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힘들어도, 또 때로 못나고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미완성은 완성을 향한 여정일 테니. 어쩌면 미완을 견디어 그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모양이 다듬어지고 채워질 모습까지 모두 내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편 예술인 증명을 4번 하고 나면- 즉 20년이 지나면 더 이상 예술인활동증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쌓아온 시간을 통해 예술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앞으로 다가올 20년이라는 시간을 한 번 상상해 본다.
중년의 시기. 그 시간까지도 내 몸 상태는 변함이 없을 수 있다. 혹은 더 나빠질 수도 있고, 또는 더 좋아질 수도 있다. 작업을 계속하기를 바라지만 못 할 수도 있고, 작업을 꾸준히 하다가 새로운 기회를 만나 상상도 못 한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때도 쭉 함께하는 관계가 있을 것이고 소원해진 관계가 있는가 하면 새로이 시작하는 관계도 있겠지. 삶은 언제나 그래왔듯 여전해서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있을 것이고 그때마다 이는 풍랑에 요동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를, 매 순간에 잘 반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림이라면 인내하며 기다리고 전진이라면 최선을 다해 전진하기를 바란다. 아무리 느리더라도, 아무리 결과가 없어 보일지라도, 아무리 바보 같고 거꾸로 가는 듯 보여도 주어진 삶을, 나만의 삶을 성실히 살기를 바란다. 조금은 기대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의 삶을 점찍듯이.
소망은 삶에 있으니까. 또 삶은 소망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