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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Sep 30. 2023

Epilogue

HOPE ・PEACE・JOY

내가 키운 수국. 작년에는 실패했지만 애지중지 키워 처음으로 올여름 꽃을 봤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크던지! 내년에도 꽃을 보고 싶다.


올여름부터 최근 3년 동안의 일들을 기록했다. 갑자기 환자가 되어 투병하게 된 이야기, 신진 작가가 되어 작품 활동을 하게 된 이야기, 그런 와중에 겪은 흔들림과 깨달음들을. 나의 스물일곱, 스물여덟, 스물아홉(이제 만 나이니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여덟)의 이야기였다.


이 글들은 모두 일기로부터 출발했다. 일기는 아픈 몸과 바닥을 친 내 마음을 쏟아버릴 유일한 구멍인 동시에 기도였다. 당시 내 삶을 소화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글을 썼고 그 글들을 다시 읽을 때면 언제든 또 눈물이 났다. 그런데 정말로 시간이 약인지 그때의 일과 심정을 읽고 떠올리더라도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내 이야기를 담담히 말할 수 있게 된 때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할 수 있게 된 만큼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지난날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투병으로 인해 남들보다 느린 걸음걸이로 삶을 살며 든 생각, 느낀 감정, 또 앞으로 병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젊은 환자로서의 삶이 어떻게 예술로 연결되어 나아갔는지 부지런히 글을 썼다. 부족하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을 때 힘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서. 그리고 역시나 내가 하고픈 바탕의 이야기는 ‘소망’이었다.


살다 보면 상황이나 환경이 여의치 않을 때가 있고, 능력이 부족할 때가 있고, 앞이 보이지 않고 현실이 버거워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다. 삶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든 다시 삶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프롤로그에서 쓴 ‘그날그날 변하는 날씨에 휘둘려도, 분명한 삶의 아름다움은 거기 반응하는 나에게 달렸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또한 내가 계속해서 소망을 주제로 작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을 사는 것에 비하면 말이든 글이든 부끄러울 정도로 쉬운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해되지 않아도 중요한 건 삶이라고, 소망이 삶에 있고 삶이 소망에 있다고 다시 말하고 싶고 쓰고 싶다.


이제 작품을 위해 적어두었던 글과 함께 끝을 맺으려 한다. 글이 끝나도 삶은 계속. 다가올 많은 순간, 언제든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유로이 바다를 누비길.








삶의 바다 가운데 닻을 내린다. 내 영혼의 닻, 소망의 닻을 내린다. 거친 파도에 저 멀리 밀려나도 언제든 이 닻을 빛 삼아 돌아올 수 있도록. 이 소망이 나를 붙잡고 이끈다. 그것을 믿는다. 어디서든 중심이 되어 길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 휘몰아쳐 부서지는 물거품 위에 틀림없는 길을 만든다. 그것을 확신한다. 평안. 평안이다.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결코 길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순간, 마치 올곧게 뻗어가는 한줄기 빛처럼 평안이 번진다. 평안이 선명하게 흐른다. 잠잠해진 내면은 곧 기쁨으로 차오른다. 때때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사나운 폭풍우가 일어나는 아득한 망망대해가, 이제는 내게 슬픔과 두려움, 분노, 좌절, 패배감을 넘어선 설렘과 기대감을 준다. 파도에 몸을 맡긴다. 이 바다가, 나는 자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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