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혜빈 Nov 24. 2024

그림과 기다림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 마음은 지난여름부터 서서히 짙어졌다. 시간이 흘러 도전해 봄직한 미술 공모전을 발견한 나는 마감일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보다 작품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만족할 만하게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디자인이든 순수 예술이든 항상 그 안과 주변을 맴돌며 살아온 사람이지만, 회화에서는 초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언제나 회화보다 입체 조형이나 설치 작업처럼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 끌려왔던 사람이다. 내가 평면 작업으로 유리, 아크릴, 스테인리스 스틸, 스티커 등을 쓰며 일반적인 회화 작가로 출발하지 않았던 것은 개인적으로 회화의 특성이 아쉽게 느껴진 이유도 있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니 그 마음이란 게 조금 뜬금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 진행하던 평면 작업은 내 건강 상태에 비해 재료가 너무 무겁고 다루는 게 벅차게 느껴진 지 오래였다. 특히 올해는 대부분을 다른 작업 방법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방황 중이었다. 조금만 집중해도 쉽게 기운이 빠지고 마는 내 건강 여건에 맞으면서도 추구하는 이미지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업 방법이 있다면 그게 무얼까 계속 고민해 왔으니, 나는 까짓것 그림을 그려보기로 한 것이다.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된 거니까.


고등학생 때 썼던 물감, 붓, 캔버스 등 10년도 넘은 그림 재료를 벽장에서 꺼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림을 막 그리려고 할 때엔 허상 같은 완벽을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곤 했다. 때로는 무기력함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때도 있었다. 나는 누워서라도 작업에 대해 부지런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조금씩 기운을 차리게 되면서는 생각했던 것을 에스키스로 그려보고 나중엔 캔버스에 습작을 진행했다. 가을 내내 아주 천천히. 감사한 것은 내가 작품으로 하여금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이전에 다른 작업을 진행해 오면서 내 안에 오랜 시간 축적되어 왔고, 지금 그것들이 점점 익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점점, 마주한 빈 캔버스가 두려운 일은 내게 없었다.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때, 작업에 대한 새로운 글(작가노트)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써 나가게 되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고민하는 것을 벗어나 이제는 내가 말하고픈 것들이 점점 세계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모양을 갖춰가는 것 같았다. 바로 삶의 중력,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하얀 캔버스는 차츰 색을 입었고 빈 메모장엔 문장이 늘어갔다. 더 이상 없을 거라 여겼던, 몸이 따라주지 않자 좌절감이 덮쳐오는 일이 여전히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을 받아들였다. 시간 중 혼자 낮고 깊게 침잠하기도, 야트막하게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나왔다. 그리고 어언 두 어달의 시간이 지나 겨울의 문턱에서 나는 첫 그림과 그림 작업에 관한 글을 모두 완성해냈다.


습작 진행 중


그림을 그리면서 작업하는 즐거움과 좀 더 잘 해내고픈 좋은 욕심, 열정이 절로 살아났다. 처음엔 그냥 붓질하는 순간이 좋았는데, 갈수록 그림이 나를 새롭게 불러일으키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을 꼽자면, 작업하는 자세가 한층 차분해졌다는 것이다. 그림이 기다려야 하는 일인 까닭이었다. 항상 마르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 제대로 칠한 물감도 그 위에 색을 쌓기 위해서는 말라야 했고, 잘못 칠한 물감을 덮으려 해도 어쨌거나 말라야 했다. 조급한 마음으로 마르지 않은 표면 위에 자꾸 붓질을 해대면 물감이 쌓이지 못하고 도리어 그림이 벗겨졌다.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할 때는 결과물 내기에만 몰두해 마음이 곧잘 급해지곤 했었는데 그걸 그림이 막아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림 자신이 그런 마음과 자세로는 나를 완성할 수 없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과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리는 일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관성으로 멈출 수 없이 내달리는 것이 아닌, 천천히 날 돌아보며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만족으로 가는 삶이야말로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었기에. 이제껏 반복된 경험으로 삶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을 알았듯이 기다림을 통해야만 작품이 완성된다는 걸 알았고, 혹여 불안함이 생기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다림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차분하게 기다리며 의연하게 시간을 쌓아가는 것이 삶이듯, 그 일은 그림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비로소 내게 맞는 옷을 입은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편안하게 숨 쉴 여유를 허락하는 이 작업이, 나를 건강하게 막아서는 이 작업이 나는 점점 더 좋아져만 갈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눈앞에 완성된 그림이 놓여있다. 그 속에 담긴 시간의 결을 헤아린다. 어쩌면 기나긴 시간, 내가 결국 돌아올 것을 알고 그림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


마르기를 기다리는 즐거움


매거진의 이전글 후반전에 들어가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