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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 Sep 04. 2020

자유롭지 못한 마음

비가 오면 우산을 접고 싶어

내가 고등학생일 때, 비가 아주 많이 온 날이 있었다. 친구와 각자 우산을 쓰고 하교를 하는 중이었고, 우리는 평소에 가던 길이 아니라 계단이 아주 많이 있던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비가 어찌나 많이 오는지 계단에 물이 아주 세차게 내려가고 있었다. 신발 안에 신고 있던 양말까지 축축해질 지경이었다.

 

다음날도 학교를 가는 학생이기 때문에 신발은 젖어도 교복은 젖지 않게 조심조심 가고 있었는데, 역시나 이리저리 불어대는 비바람에 어깨부터 치마 밑까지 아주 조심스럽게 젖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비 맞을 바에는 우산 치우고 비 맞고 싶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어떻게든 피해보겠다고 그 조그만 우산 안에 몸을 꼬깃꼬깃 접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스스로가 참 답답하게 느껴진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이렇게 저렇게 해도 맞을 바에는 아예 시원하게 맞아버리고 싶었다.


불과 몇 분 전, 학교 건물에서 나올 때 내 발은 아주 뽀송뽀송 했다. 발이 서서히 축축해지는 느낌이 싫었기 때문에 조심조심 발을 디뎠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웅덩이를 만났던 것이다. 일부러 보폭을 줄여가며 조심을 했건만 야속하게 젖어버리는 신발과 양말. 나는 잠깐 짜증이 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편하게 걸어야지 싶어 성큼성큼 아무 생각 없이 걷기 시작했는데, 그러고 나니 신발이 젖은 게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참 웃긴 게 막상 벌어지고 나면 엄청나게 무모해진다. 그전에 내가 꾸역꾸역 지켜오던 게 조금 쑥스러울 정도로.


"한번 해볼래? 우산 치우고 비 맞는 거?"

"나는 싫어. 굳이 우산 있는데 비를 왜 맞아? 게다가 온몸이 젖는데... 으~ 찝찝해. 감기 들어~"

"에이, 혼자 하긴 싫은데..."

"하려면 너 혼자 해~ "


그날 나는 결국 꾸역꾸역 우산을 부여잡고 머리가 뽀송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그날 친구가 "그래!"라는 한마디를 해주었다면 나는 당장에 들고 있던 우산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튀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내가 가진 생각이 조금 미쳐 보였나? 싶기도 해서 빠르게 생각을 접었다. 사실 그냥 신발이 젖었을 때 느꼈던 것처럼 벌어지고 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을 텐데... 아니 심지어 재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그때 그 순간이 생각난다. 여전히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내리고 비를 맞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러지 못한다. 해보고 싶던 것을 해보지 않으면 이렇게 오래오래 생각이 나는가 보다. 그리고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지 않은 채로 오래 두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까지 다다르는 것 같다.


우산이 아예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 기대어 보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날 리가 없다. 매번 운 좋게도 우산을 얻거나, 그전에 비가 그쳤다. 어쩌다 비를 맞는 순간이면 어찌나 쪼잔하게 비가 내려대는지... 더 우렁차게 내리란 말이야! 싶었다. 들고 있던 우산을 내려놓는 것, 아니 아예 펴지 않는 것이 뭐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나는 젖어버린 신발을 보며 물웅덩이를 찾아 망설임 없이 돌진하는 자유를 언젠가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운 좋게 가지고 있던 우산을 접고, 세상 무너져라 내려대는 세찬 빗 속에서 더 이상 젖어들 것이 없다는 그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같이 해볼래?"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더 좋고. 그 말 보다 먼저 우산을 뺏어서 접어주는 사람이 나오면 두배로 더 좋고!! 아니.. 그냥 내 두 손으로 직접 접어들면 아주아주 매우 매우 더 훌륭하게 좋고.

그 순간이 오면 나는 "거봐! 별거 아니었어! 그냥 하니까 되네! 하면 되는 거였네!"라고 크게 소리쳐 줄 것이다.




사진계정 @druphot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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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계정 @hey_d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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