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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주연 Feb 25. 2020

영국 병원에도 한국어 통역 서비스가 있다

#영어 1도 못하는 영국맘_영국 NHS병원

 

밤새 녹아내린 마음

가려움으로 잠 못 이루는 아이를 보며 참고 참은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뭘 잘못 먹였나? 로션을 적게 발랐나? 가려움이 한번 시작되면 참지 못하고 밤새도록 긁기 시작한다. 온몸에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또 바르고, 연고를 덧바르며 달래도 가려움은 가라앉지 않았다


새벽 2시, 긁는 아이를 욕조에 담갔더니 상처 난 부위가 아린지 눈도 못 뜬 채 운다. 피가 나도록 긁는 아이를 보는데 내 몸 어딘가 긁힌것 같았다.


아이는 잠시 눈 부치고 일어나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보며 웃는 모습에 눈물을 쏟고 만다. 얼마나 많은 밤을 이렇게 보내야 괜찮아질까? 또 얼마나 아플까? 그렇게 마음이 녹아내린 날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았고 병원을 찾을 때마다 달라지는 건 업그레이드되는 스테로이드 연고와 보습제 처방뿐. 주변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다! 라며 나에게 걱정마라 하지만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민간요법이라도 건네주는 이들이 난 더 고마웠다.


100일 될 무렵 로션에 집착하던 나

영국은 석회 물이라 성인인 내가 씻어도 건조해지고 피부가 뒤집히는데 여린 아이 피부엔 어떨까 싶어 집으로 들어오는 수도관에 필터를 설치해 수도에서 부드러운 물이 나오게도 해보고, 샤워기에 필터를 설치해 녹물 제거도 해 보아도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중 영국은 지역마다 석회질 농도가 다르다는 말을 듣고 아파트 전체가 연수된 물이 나오는 곳이 있다기에 수소문 끝에 이사를 했다. 물 때문에 이사했다고 말하면 믿을까? 극성 엄마라고 할 것이다. 이사 간 집은 게이트에서 집까지 3분 이상은 차를 몰고 들어와야 하는 '와우' 감탄이 절로 나오는 리조트 같은 집이었지만 나에겐 감옥과도 았다.


남편이 회사 간 이후면 가드너들이 잔디를 깎고 가든 정리하는 사람과 관리인 외엔 하루 종일 사람을 볼 수도 없었다. 옆집에 사람이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곳이었다. 프라이빗 공간으로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하루 종일 감시당하는 느낌이었다. 짜인 일과처럼 같은 시간 정원을 산책하고, 연못 벤치에 앉아 물고기 밥을 주고, 수영장에서 물놀이하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아이와 나만 사는 나라 같았다. 반복된 일상에서 오는 무기력 보다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이 찾아 올 무렵 아이 피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밤에 긁지 않고 잠을 자는 날들이 많아졌다.


시간이 약이었을까? 전원생활 때문이었을까? 수영장에서 키운 체력 때문이었을까? 호전된  이유는 아직도 모르지만 긁지 않고  잘 자는 아이를 보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에겐 감옥 같은 곳이었지만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곳이었고, 온전히 가족과 아이에게 집중한 시간이었고, 아이가 가장 많이 웃던 곳도 그곳이었는지 모른다.


아파트 테라스에서 보이는 정원의 모습
아파트 앞 정원의 모습
아파트 정원 연못




하이스트릿 쇼핑 길에 초밥을 포장해서 갈까 하다가 아이가 잠이 들어 여유 있게 점심을 먹고 가려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들고 앉는 순간 아이가 깨 버렸다. 아! 오늘도 우아하게 점심 먹긴 글렀다. 늘 엄마의 자유시간은 짧기만 하다!


얼른 먹고 가자! 싶어 아이를 옆 자리에 앉히려고 하다가 뜨거운 미소 수프를 아이 다리에 엎지르고 말았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다급히 바지를 벗겼지만 이미 허벅지 살이 벗겨져 화상을 입은 듯 붉게 부어 있었다. 화장실로 데려가 찬물로 다리를 씻어내며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점원이 화장실을  노크하며 괜찮냐며 도와주겠다 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 아이를 진정시키고 자리에 돌아오니 자리는 이미 말끔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 누군가 다가와 도와주고 싶다며 말을 걸었다. 그땐 누구라도 도와줬으면 하던 찰나였다. 그는 침착하게 아이에게 말을 걸며 우리를 안심시켰고 상처를 본 후 얼음을 담은 팩을 가져와  아이 다리에 얹혀주며 아이 이름과 나이며 집은 여기서 가까운지 물었다. 간단한 질문이라 답은 할 수 있었지만 더 많은 질문을 하면 난처할까 난 영어를 잘 못한다고 말을 했더니 상관없다며 자리로 돌아가 종이와 펜을 가지고 왔다. 간단한 단어로 본인이 의사이고 상태가 심하진 않은 것 같지만 흉터가 생길 수 있으니 병원을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간단히 메모를 적어주며 병원에 얼른 가 보라는 것이다


병원 도착  화상 자국과 메모 보여주니 신기하게 바로 드려 보내 주었다. 급한 마음에 병원은 왔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졌다. 의사와 인사를 나눈 후 영어를 잘 못한다고 말을 하니 괜찮다며 앉아 기다리라고 하였다.


의사는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시도했고 그 사이 의사는 아이에게 스티커를 건네며 아이의 상처를 보기 시작했다. 몇 분 후쯤 전화기 넘어 한국인 목소리가 들렸고 본인이 통역을 해준다며 상태를 얘기해 보자고 말을 했다! 엥? 누군데 통역을 해주는 거지? 동네 엄마에게 들은 병원 가면 통역해 준다는 말이 이거구나 싶었다. 통역사를 통해 아이의 상태를 들을 수 있었고, 연고를 처방해 주고 2일 후 다시 상태를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통역 서비스를 본인이 신청했으니 2일 후에도 부담 갖지 말고 혼자 와도 좋다는 얘기였다.


병원을 나서 집으로 오는 길 유모차에서 아이는 잠이 들었고, 잠든 아이를 보니 눈물이 나왔고, 유모차를 밀며 얼마나 울었던지 이런 응급 상황에서 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무능력해 보이는 내가 한없이 싫어서 나는 눈물이었다.


지난달 한국에서 건강검진 후 이상 소견이 나와 진료 상담을 가던 날이었다. 대학병원 진료 대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아이를 맡기고 가고 싶었지만 마땅치 않아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대기 시간은 예상 이상으로 더 길어지고 아이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해서 정신이 없을 때였다. 대기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컨시어지에 갔을 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떠들썩했다. '보호자와 같이 와야 진료가 됩니다'라는 말만 계속해서 들렸다. 나이 드신 분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셨나? 거동이 불편해서 그런가 했더니 어르신이 아닌 중국분이셨고 그분은 계속 중국말로 안내해 주시는 분은 한국말로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보호자와 같이 오셔야
진료를 볼 수 있어요?!

그분은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을까? 궁금 했다. 런던 살며 언어의 답답함을 누구보다 느끼고 있고,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제 보이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도 외국인 대상 통역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런던으로 돌아와  한국에선 서비스가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고, 일부 병원에서 외국인 대상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발표 기사 있어 안심이 되었다. 내가 갔던 병원에서 서비스가 없었는지 어느 병원이든 환자들을 언어 때문에 돌려보내거나 보호자와 함께 오라는 안내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



현재 영국 NHS에서 통역 서비스는 실시하고 있지만 병원마다 컨디션이 다르고, 유료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으니 병원마다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통역 서비스에 대해 여행객들이라면 알아 두면 좋을 것 같다. 뉴몰든, 킹스턴, 레인즈파크 등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지역 NHS 문의해도 좋을 것 같고, 전화 상담으로는 응급전화는 999, 의료상담은 111로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Interpreting service]


https://www.kingstonhospital.nhs.uk/patients-visitors/patient-services/interpreting-and-translation.aspx


한국에서도 병원마다 통역 서비스할 수 없다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일환으로 유료로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게 하거나 의료상담 문의처를 마련해서 전화 상담 서비스를 동네 의원에서도 받아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어 1도 못하는 영국 맘이 아이를 안고 병원에 달려가는 마음을 누가 알까? 나의 치부지만 나와 같은 엄마가 또 없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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