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 말고 캠핑

관점을 바꿔 행위의 의미를 다르게 봐보자

by 최용

강하고 긴 여름에 밀려 쉽게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가을이 어느새 곁에 와 있음을 느낀다. 아침저녁 쌀쌀해진 공기 속에서도 느껴지지만, 도로 위 부쩍 많아진 오토바이를 보면서도 가을이 성큼 와 있음을 체감한다.


나는 취미로 오토바이를 탄다. 가을은 오토바이 타기 최고의 계절이다. 주말 국도변에는 많은 오토바이들이 보인다. 가을이 온 것이다.


가을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라이더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오토바이 라이딩 취미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건가?” 단순히 내 눈에만 많아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여름의 무더위와 비교되면서 가을의 선선한 날씨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라이더들을 불러낸 것인지 궁금해졌다.


실제로 데이터를 찾아보니 현재 국내에 등록된 오토바이는 약 225만 대 수준이다.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의 10%도 되지 않는다. 그중 대부분은 배달 등 업무용으로 쓰이고 있다.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전체 오토바이의 90% 이상이 업무용으로 추산된다. 배기량이 낮은 125cc급 오토바이는 대부분 배달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판매된 배기량의 비중을 통해 대략적인 시장 구분이 가능하다. 물론 취미로 저배기량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업무용이 압도적이다.


데이터로 확인되듯, 여전히 업무용 오토바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취미용 오토바이 판매대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업무용 오토바이의 판매대수는 감소한다는 기사가 확인되는 것을 보면 나의 추측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오토바이 판매 데이터 관련 된 것이 아니다. 업무용 삶과 취미용 삶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글을 쓴다.


베트남에는 오토바이 택시가 있다. 자동차보다 저렴하게, 그리고 복잡한 시내를 훨씬 빠르게 이동시켜주는 교통수단이다. 하노이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했던 기억이 있고, 하장 루프 투어를 갔을 때에도 깊은 산속에서 오토바이가 주요 운송수단으로 활용되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사람을 태우고 짐을 나르며 베트남에서의 오토바이는 이동과 생계의 필수 도구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취미로 탄다.


어렸을 적 가족 여행을 떠났을 때 기억이 난다. 남해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잤던 기억이다. 당시의 텐트는 요즘처럼 가볍고 편리한 것이 아니라 쇠파이프 뼈대로 조립해야 하는 묵직한 터널형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캠핑’이라고 부르지 않고 ‘야영’이라고 불렀다. 단순히 숙박비를 아끼기 위한 생활의 방식이었지, 지금처럼 ‘취미 활동’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최신 장비와 멋진 용품을 갖추고 즐기는 ‘캠핑’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오토바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에서 보았듯,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오토바이가 철저히 생활용·생계용 도구였다. 취미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은 극소수 였을 것이다. 얼마나 극소수 였으면 이들을 ‘폭주족’이라 부르며 딴 세상 사람 취급을 했겠는가. 물론, 위험하게 오토바이를 타는 젊은이들이 자초한 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오토바이는 여전히 많은 경우 생활을 위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여가이자 취미가 되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본질적인 행위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예전에도 텐트를 치고 잤고, 지금도 텐트를 친다. 단지 ‘야영’에서 ‘캠핑’으로 이름과 의미가 바뀌었을 뿐이다. 예전에도 오토바이를 탔고, 지금도 오토바이를 탄다. 다만 ‘생계의 수단’에서 ‘취미의 수단’으로 인식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다른 것은 무엇일까? 행위 자체는 동일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생계를 위해 배달하는 라이더와 취미로 주말을 즐기는 라이더의 현실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라이딩’이라는 행위를 공유한다는 사실에 주목해보면 어떨까.


내가 하는 일이 때로는 고단하게만 느껴질 때, 혹은 그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만 보일 때, 잠시 물러나 나의 시각을 달리해 보는 것이다. 같은 행위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지각해 보는 것. ‘나의 일’이 누군가에게는 ‘취미’나 ‘삶의 즐거움’일 수도 있다는 점을 지각할 수 있다면, 일상에 대한 태도 역시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종종 무엇을 하느냐에 매달리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있다. 생계를 위한 배달 라이딩과 자유를 위한 취미 라이딩은 행위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고 같다. 결국 같은 오토바이를 타고 같은 바람을 맞으며 길을 달리는 행위다. 그 차이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열심히 배달 일을 하시는 라이더 분들이 이 글을 보시면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리라 치부하실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의 핵심은 노동과 취미를 같이 보자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일이 나를 짓누를 때 내가 하는 노동의 행위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는 시도도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 말이다.


그렇게 바라보는 순간, 단조롭던 일도 조금은 특별해지고, 버거웠던 하루도 한결 가볍게 다가올 것이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삶을 대하는 또 하나의 지혜일 것이다.


나를 그렇게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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