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나의 규칙과 루틴
‘다 이루어질지니’
현실성 떨어지는 콘텐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예고편을 보고 판타지물 같아서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병맛 같은 느낌은 일말의 관심도 더 멀어지게 했다. 그러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급 관심이 갔다. 이쁜 수지와 멋진 우빈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크게 한몫했다.
지니 덕분에 추석 연휴가 더 풍성했다. 집사람이 조용필 콘서트를 보며 감동받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다 이루어질지니’ 후반부에 집중하며 혼자 큭큭대고 있었다.
이블리스와 이즈라엘 두 남자에게서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겹쳐보이고 기가영에게서 지은탁이 겹쳐보여 ‘도깨비’ 글로벌 버전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훈련된 사이코패스가 세상과 연결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다 이루어질지니’는 나에게 멋진 작품이었다.
왠지 KT에서 후원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기가영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이코패스는 할머니와 동네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감정을 인지적으로 배우고 훈련한다. 이러한 훈련 덕분에 기가영은 힘겹기는 하지만 나름 괜찮게 공동체와 연결되어 살아간다.
기가영이 공동체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가장 핵심적인 도움요소는 할머니와 치과의사 친구인 최민지이다. 이 두 지지자원이 없었다면 기가영은 극중에서 보이는 그 모습을 갖지 못했을 가능성이 무척 크다. 특히 할머니는 어렸을 때 부터 일반인과 달라보이는 손녀를 학습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엇을 어찌 알고 그렇게 잘 키워내나 싶을 정도로 잘 훈련시킨다.
할머니의 가르침과 훈련으로 갖추게 된 기가영의 주요 특징에는 규칙과 루틴이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해야 하는 일들이 정해져있고, 화가나면 손목시계 초침을 세면서 분노를 가라앉히는 등의 행동을 하면서 규칙과 루틴을 지킨다.
나는 치료를 하는 상담사가 아니다. 내가 만나는 고객들은 병리적 스펙트럼 속에 있지 않다. 만약 병리적 증상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면 좋은 상담사나 치료사를 소개하고 연결하지 내가 코칭하지는 않는다. 치료와 코칭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와 코칭 장면에서 활용되는 기법들이 제법 겹치기도 한다.
기가영이 학습한 규칙과 루틴은 코칭에서도 변화를 위해 활용하는 기법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50분 타이머를 맞춰두고 쓰고 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지는 현상이 자주 확인되어서 나 나름으로 만든 규칙이다. 핸드폰도 멀리 두고 알람소리도 무음으로 해 두었다. 최소한 50분 동안은 딴 짓 하지 말고, 하고자 목표했던 행동에 집중하기 위해 만든 규칙이다.
그리고 이 글은 연재 당일 저녁 7시 부터 쓰기 시작한다. 경험치를 분석해보니 글을 쓰는데 나는 보통 3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10시 연재를 목표로 7시부터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글감은 그때 그때 기록한 것들에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은 정해두고 루틴에 맞춰 쓰고 있다.
내가 정한 규칙과 루틴이 나의 집중력을 높인다. 결과적으로 성과도 높인다.
이런 규칙과 루틴을 만들고 지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내가 가진 습관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에게는 규칙과 루틴이 있었다.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운동하고 8시 30분이 되면 출근하는 루틴, 매월 25일이면 월급이 입금되는 규칙, 나는 그것이 나의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규칙과 루틴을 잘 만들고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직장 밖으로 나와보니 지금껏 내 것이라 알고 있었던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키고 따른 규칙과 루틴이었던 것이지 내가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 동안 무척 혼란스러웠다. 규칙과 루틴이 사라진 일상이 혼란스러웠다. 나만의 규칙과 루틴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다. 잘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난 규칙적이고 루틴에 맞춘 생활을 30년이나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규칙과 루틴을 잘 만드는 사람이기보다는 잘 지키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조직의 리더로 내가 만든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조직에서 필요로 되어지는 조직의 규칙과 루틴이었지 내가 나를 위해, 나의 필요를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프리랜서로, 1인 사업자로, 아니 좀 더 실존적으로는 나 자신으로 나 답게 살아가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나만의 내가 만든 규칙과 루틴이 필요하다.
나의 것이라고 알고 있는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우선 살펴보자. 내가 지키고 있는 규칙과 루틴이 나의 것인지. 나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지키되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자. 아주 사소한 규칙이어도 좋다. 아주 쉬운 루틴이어도 좋다.
나의 것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응원하기 위해서.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막 알람이 울린다. 오늘도 이렇게 나의 규칙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