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의지보다는 강한 환경장치를 활용해서 나를 움직이게 하자.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드디어 잡았다.
나는 학자가 아니니 거창한 이론을 탐구하거나 장시간 투자가 필요한 연구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코치로서의 일과 맥락이 닿은 의미 있는 논문을 쓰고 싶다. 그렇게 욕심을 내다보니 논문 주제 잡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논문 주제를 잡을 때, 쓰고 싶은 논문과 쓸 수 있는 논문, 써야만 하는 논문에 대해 보통 고민한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나의 지도교수님은 써야만 하는 논문을 제시하지는 않으셨다. 덕분에 쓰고 싶은 논문과 쓸 수 있는 논문 사이에서만 고민해도 되었다. 당연히 쓰고 싶은 논문을 쓰고 싶은 마음이지만 연구를 오랫동안 한 사람도 아니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쓸 수 있는 논문만 쓰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의지와 현실 간에 조율하면서 나름의 해답을 찾는데 시간이 제법 걸린 것이다.
이제 잘 쓰기만 하면 된다.
논문뿐만 아니라 매주 쓰는 글도 그렇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려고 한다. 나의 일상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 중에서 나에게 제법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나름 나에게 정서적이거나 인지적인 성장을 준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런데 매일, 매주 그런 일이 생기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물론 글쓰기 소재를 찾기 위해 매 순간 세심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들어서 글감을 예전보다는 잘 찾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습관이 들었다고 해도 매번 좋은 소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연재는 하겠다고 정해두었다. 그러다 보니 뭐라도 써야 한다. 연재라는 장치를 마련해 두면 꼭 써야만 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쓰게 될 것이라는 행동설계이론을 활용한 것이다.
나름 효과가 있었다. 사정에 따라 연재를 놓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루틴화해 둔 환경장치 탓에 매주 월요일이면 글을 꼭 써내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논문이나 강의 같은 특정 생활패턴에 빠져서 생활하는 동안은 새로운 소재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글은 써야 한다. 그래서 글감을 뒤지다 못 찾으면 고민한다.
- 연재를 위해서 뭐라도 그냥 써야 하나?
- 아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할 바에야 안 쓰는 게 나을 거야. 이번 주는 건너뛰자.
- 그럴 거면 연재는 뭐 하려 하겠다고 정해둔 거야? 그건 너와의 약속이잖아. 지켜야 해.
- 약속을 지키면 좋지. 하지만 나에게는 약속을 지키느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품질 높게 쓰는 게 더 중요하단 말이야.
- 그럼 약속도 지키고 네가 쓰고 싶은 글도 쓰게 해 봐.
- 그게 쉬우면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겠니?
글감이 없는 월요일 저녁은 내 안에서 각자의 목소리들이 싸우는 이런 소리들로 가득하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얼마 전에 알게 된 하버드의 글쓰기 방법을 내 글감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맞네, 연재라는 장치를 만들어 두고 자리에 앉아있으니까 글감이 떠오르기는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버드 글쓰기 방법을 나의 논문 쓰기랑 글쓰기와 연결시켜 본다.
Harvard 대학교에서 논리적 글쓰기 교육에 사용하는 오레오(OREO), Opinion(의견) → Reason(이유) → Example(예시) → Offer(제안)이라는 구조가 있다.
OREO 구조는 일반 글쓰기에서도 참고하면 좋은 구조로 보인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의견(Opinion) 일 것이다.
오늘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잘 못하고 있을 때, 또는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을 나름 잘 해내기 위해서 나만의 환경장치를 만들어서 활용해 보자.’이다.
이어서 이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이유(Reason), 즉 글을 쓰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목적)는 이 글의 연재목적과 같다. ‘나 스스로를 응원하고 챙기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글을 쓰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OREO의 세 번째, 예시(Example)는 글감이자 글의 소재일 것이다.
오늘 나의 글감은 어렵게 찾은 논문주제 선정 결과와 글감부재의 고통, 그리고 하버드 글쓰기 교육법 OREO이다.
네 번째로 제시되어야 할 것은 제안(Offer)이다.
내가 전하고 싶은 제안은 지금 쓴다.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해내거나, 해야 할 일을 잘 못해 어려움이 있는 경우, 행동설계이론에서 제안하는 환경장치를 마련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해 보면 어떨까? 내가 글쓰기를 하기 위해 연재라는 환경장치를 만들어서 떠 오르지도 않는 글감을 그나마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덕분에 글을 쓰게 된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환경장치를 설계해서 잘 활용해 보면 좋겠다.
이렇게 오늘도 연재라는 환경장치 덕분에 내 안의 여러 목소리가 잠시 휴전을 한다.
덕분에 편안한 밤이 될 것 같다.
다들 굿밤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