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피어있는 꽃을 바라보자
오랜만에 꽃배달을 다녀왔다.
귀하고 소중하게 쓰일 꽃을 환한 표정으로 받아 드는 이에게 전달하는 꽃배달은 언제라도 즐겁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미소 담긴 표정은 참 이쁘다. 내 마음도 이뻐진다.
나는 꽃이 시드는 것이 싫었었다. 그래서 선물 받은 꽃들을 모두 말려서 한동안 보관하곤 했었다. 그런데 꽃 전문가인 집사람과의 대화 이후에 생각을 바꿨다.
“난 꽃이 시드는 게 아깝더라.”
“그치, 아깝긴 해. 그런데 지금 이 꽃 너무 이쁘지 않아? 난 그냥 지금 이쁜 이 꽃이 좋아. 꽃을 만지는 이 순간이 좋고, 꽃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나는 참 좋아”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꽃이 시들어질 상황에 좀 더 포커싱 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생각을 바꿨다.
김훈 작가가 세바시에 나와서 한 강연을 얼마 전에 보았다.
그는 해마다 초등학교 입학식 구경을 간다고 했다. ‘봄볕이 가득한 운동장에 마을의 젊은 부모들과 1학년 신입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느낀 생동감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봄볕 속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은 찬란했고 학교 운동장은 야생하는 꽃밭처럼 피어났습니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을 바라보면서 인간은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인간의 이 아름다움은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자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런 날은 노년의 나에게 기쁜 날입니다. 이 기쁜 날을 남에게 말해주고 싶은 날입니다."라고.
며칠 전 내가 세바시 강연에서 들었던 김훈 작가의 말들이 오늘 내가 꽃배달을 하면서 바라본 꽃에서 다시 피어났다.
나는 큰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장에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줄을 잘 섰어야 할 텐데.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야 할 텐데.’
나는 아이가 맞은 그 순간의 시간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아들이 맞이할 앞으로의 날들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땐 그게 맞는 줄 알았었다.
그 시절의 나는, 불안에서 비롯된 책임감으로 오늘보다 내일을 먼저 챙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쁘게 피어있는 꽃들의 아름다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의 신나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기쁜 순간을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애초에 ‘있는 그대로의 지금 모습’을 아름답게 즐길 수 있는 존재였지만, 무언가로 인해 걱정과 불안을 심어 키우는 존재가 된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지금의 순간’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게 다시 변하는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김훈 작가도 강연에서 그랬다. 젊은 여러분들은 느끼기 힘든 것일 거라고. 나 역시 공감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고 그랬었다는 것, 순간을 즐겼었고, 순간을 소중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적으로라도 알고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꽃이 시드는 모습을 미리 생각하며 아쉬워하기보다는, 내가 바라보는 꽃의 지금 모습을 느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꽃을 전하면서 나누는 이 기쁘고 아름다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 좋겠다.
불안한 나의 미래와 팍팍한 나의 하루도 챙겨야 하지만, 지금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나 자신의 순간을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인정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