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말고, 내가 정한 쓰임새

마상에서의 단상

by 최용

엊그제 오랜만에 바이크에 키를 꽂고 라이딩을 다녀왔다.


이런 저런 이유로 즐겨 타던 투어링용 바이크를 처분한 후, 어드벤쳐 바이크만 있었던 터라 모임에서 임도를 가지 않는 이상 바이크를 잘 타지 않게 되었었다. 그런데, 어제는 임도를 타는 친구들이 인제에서 모임을 가진다기에 얼굴이라도 잠시 보고싶어 오전 반나절을 빌어 다녀왔다.


바이크는 여러 종류가 있다. 브랜드도 다양하지만 쓰임에 따른 종류도 여럿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공도라고 하는 이 도로를 주로 타면서 장거리 투어를 다니거나 하는데 쓰이는 투어러가 있고, 도심이나 근거리를 다닐 때 쓰임이 좋은 크루저도 있다. 산을 전문으로 타는 엔듀로라는 부류의 모터사이클도 있고 트랙을 주로 타는 스포츠바이크, 그 스포츠바이크를 닮은 R차라 불리는 녀석들도 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어드벤처 바이크는 공도와 비포장도로인 임도를 함께 탈 수 있는 기종이긴 한데 가볍고 날렵해서 주로 임도 라이딩용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바람쐬러 라이딩 하러 나가고 싶어도 이 녀석을 선뜻 키온 시키지 않게 된다. 덕분에 커버가 씌워진 채 주차장에서 한동안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어제 모임에 가기 위해 오랜만에 탄 것이다.


양구를 거쳐 인제로 넘어가는 옛길을 이용했다. 라이딩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오랜만에 아주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상쾌한 기분을 왜 즐기지 못했을까? 이 녀석으로도 충분이 즐길 수 있는 이 라이딩을 왜 안하고 있었을까?


사람이 깊은 생각에 잠기기 좋은 세 군데가 마상(馬上), 측상(側床), 침상(枕上)이라고 했던가? 인제가는 길, 나의 말, 바이크 위에서 든 이런 저런 질문들이 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쓰임에 맞게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목적에 맞게 사용한다는 의미이겠지? 내가 가진 이 어드벤쳐 바이크는 비포장을 가볍게 달리기 위한 용도이니 임도 라이딩이라는 목적에 사용되는 것이 맞는거겠지? 그런데, 이 녀석은 어드벤쳐이기 이전에 바이크이지 않은가. 바이크의 존재 목적은 뭐지? 내가 타는 바이크는 이동이나 생활의 수단이 아닌 여가시간을 즐기기 위한 것이니 여가를 즐기는 목적, 즉 상쾌한 바람을 맞는 용도가 그 쓰임새이겠지. 그런데 난 이 친구를 나에게 필요한 바이크 본질의 목적이 아닌 생김새를 기준으로, 그리고 제조사에서 만든 쓰임새를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의 전개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뭐지? 나의 쓰임새는? 나는 나 자신을 원래 내가 태어난 그 용도로 쓰고 있나? 아님, 세상이 정해준 쓰임 용도로 살고 있나?


그러다 문든, 하차감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차의 본질은 이동수단인데, 하차감의 용도로 차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의 본질은 존재인데, 비교나 성공의 수단으로 나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이 깊은 생각에 잠기기 좋은 세 군데를 잘 활용해야 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바이크를 좀 더 자주 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가진 바이크에 내가 정한 그 용도로.

누군가가 정해준 쓰임새가 아닌, 내가 정한 그 용도로 내 삶을 잘 즐겨야겠다는 결론도 내렸다.


이래저래 바이크는 참 쓸모가 많다.

바람을 맞게 해주고,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고, 내 삶의 중요한 결론도 내게 해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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