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내가 주도한다는 효능감
나의 딸 한희는 프로골퍼다. 역할 앞에 ‘프로’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프로페셔널’함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다. 어린 나이에 그 수식어를 얻기 위해 참 많은 것을 참고 훈련해 왔다. 수많은 훈련 중의 하나가 ‘자신만의 루틴 만들기’였다.
늘 긴장과 압박 속에서 훈련하고 시합에 임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루틴은 중요한 도구다. 의식적 사고를 완전히 멈출 수는 없지만, 불필요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훈련된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도록 돕는 장치가 바로 루틴이다. 긴장 속에서도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만드는 훈련, 그것이 선수들이 말하는 ‘자신만의 루틴 만들기’이다.
이 ‘자신만의 루틴 만들기’가 비체육인들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있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그리고 운동선수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에 대해서 한희가 물어왔다. 내가 예전에 딸에게 물었던 딸아이의 일상루틴과 관련된 질문을 이번에는 한희가 좀 더 확장해서 다시 물어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신만의 루틴 만들기’의 효과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 효과는 여러 심리학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루틴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먼저, 루틴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해 준다. 아침에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와 같은 사소한 결정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면서 우리는 결정피로를 경험한다. 자동화된 루틴은 불필요한 결정에 쓰이는 정신적 에너지를 아껴주고, 그 에너지를 정말 중요한 일, 예컨대 창의적이거나 복잡한 문제 해결에 사용할 수 있게 돕는다. 스티브 잡스의 터틀넥과 청바지 차림은 일상 루틴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또한, 루틴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게 해 준다.
기상, 식사, 수면 시간 등과 같은 일상루틴이 유지되면 하루의 구조가 분명해진다. 하루가 구조화되면 심리적 안정감이 높아지고, 불안과 스트레스 수준도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무엇보다 ‘내가 나의 하루를 통제하면서 시작하고 있다.’는 감각은 자기 효능감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루틴은 또한 좋은 습관을 강화하고 나쁜 습관을 소거하는 시작점이 된다.
습관은 신호, 반복행동, 보상의 순환 구조로 형성된다. 루틴이 자리 잡으면 특정 신호에 대해 자동적으로 행동이 이어진다. 의지력에 기대는 행동은 늘 불안정하지만, 루틴으로 만들어진 행동은 훨씬 안정적이다. 이 안정적인 반복은 성취 경험으로 이어지고, ‘나는 내가 정한 것을 해 내는 사람’이라는 긍정적 자기 평가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자기 효능감의 토대다.
이처럼 루틴이 주는 힘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루틴 만들기를 종종 어렵게 여긴다.
이유는 대개 루틴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루틴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어느 해군제독이 어느 대학의 졸업축사에서 이야기했듯,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침대를 정리하는 것과 같은 작은 루틴이면 충분하다. 크고 멋진 루틴 하나 보다는, 작고 소소한 루틴 여러 개가 더 효과적이다. 일상을 안정적으로 지탱해 주는 것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작은 행동들이다.
그렇다고 남들이 하는 루틴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나의 내적동기와 연결되지 않은 루틴은 시작하더라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고, 습관으로 자리 잡기 힘들다. 그래서 먼저 필요한 것은 나에게 필요한 루틴이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일이다. 나의 Pain Point를 찾아보고, 변화시키고 싶은 지점을 명확히 해보자.
예를 들어, 나는 늦게 잠들고 아침에 제 시각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제 시각에 일어나서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기’를 목표로 설정했다.
그다음 단계로 효과적인 것이 if-then 기법과 같은 자기 조절 전략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if가 ‘의지’가 아니라 반드시 구체적인 상황 단서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이렇게 설계했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바로 운동화를 신는다.’
잠들기 전에 침대 옆에 러닝머신용 운동화를 두어서 눈을 뜨는 순간 자동으로 행동이 이어지도록 환경을 설계했다. 의지를 끌어내려 애쓰는 대신, 행동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러닝머신 위에서 몸을 움직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상 시각을 지킬 수 있었다.
이 루틴이 일주일, 한 달 정도 이어지면 어느 정도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루틴을 방해하는 방해요소들도 반드시 등장한다. 그래서 방해요소에 대한 대비책, 즉 Plan B를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 원하는 기상 시각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정 이전에 잠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종종 12시를 넘겨 일을 해야 하는 날도 있다. 이런 날까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루틴은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예정된 기상 시각에서 30분 이상은 넘기지 않는다.’는 보완 규칙을 만들었다. 알람을 두 개로 설정하고, 두 번째 알람이 울리면 무조건 일어나서 운동방으로 가는 루틴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 처럼 루틴은 운동선수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루틴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느껴지는 세상에서 ‘적어도 이것 하나는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루틴은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삶의 방식이고, 나를 안정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도구이다.
운동선수들처럼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 자동적 수행을 끌어내기 위한 목적의 루틴은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루틴 만들기’는 삶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훨씬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삶의 기술이 된다.
소소하지만 강력한 '나만의 루틴'을 오늘부터 하나씩 만들어보자.